시조 1 88

비 그은 금산사

오는 비 막을 수 없고 가는 비 돌릴 길 없어 비 맞아 칠십리를 비 그어 삼십리를 아담한 그대와 함께 모악산에 들어서다 산 좋고 물 좋은 것 볼수록 고마운 일 금산사 돌머리의 촉촉한 벚나무길 그대와 가파른 숨결로 끌끌하게 오르다 연꽃 빛 맑은 마음 빛살보다 조요하고 밟히는 걸음마다 풍경소리 요요한데 머금은 단아한 웃음 모악산 는개처럼 피다.

시조 1 2022.05.01

선돌

다정한 형과 아우인 양 굽어보고 우러르고 거대한 부부 장승인 양 올려보고 내려보고 아슬한 바위 벼랑으로 억만 년을 솟아 있다. 평창강이 발등 밑을 슬그머니 감겨 흐르고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풀꽃 하나 다치쟎고 의연히 찬나무들 품고 산맥 끝에 살풋 섰다. 땅거미의 종종걸음에 산천은 층층이 눕고 손잡고 쓸어 안고픈 애타는 사랑 절절치만 한치도 좁히지 못하는 지호간의 숙명이여!

시조 1 2022.04.29

추야 산장

그게 시월의 밤이다. 그냥 오늘은 점만 찍을란다. 어둠에 묻힌 상상봉에 발자욱을 찍었다. 하늘에 닿았다. 땅이 내려다 뵌다. 바람은 차지만 상큼하다. 가슴이 뚫린다. 귀는 멍멍하다. 가녀린 가지 목이 애달프다. 홀 벗은 고목이 존경해진다. 조그만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린다. 역사의 함성, 세월의 함성. 더 작아진 자신을 본다. 떠벅떠벅 발길을 내민다. 부끄럼도 작아짐도 날아간다. 꼭데기 봉도 안 뵌다. 난 다시 산다 염치도 없이 부끄럼도 모르고 사람은 참 작다. 그래도 씩씩하게 간다. 뭔 줄도 모르고 자기 수련을 찾아야 한다.

시조 1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