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던 책을 다 끝내고 나니 새벽이다.
그냥 잠들수도 없다. 약을 두가지 먹기위해 기다려야 한다는게 참 씁쓸하다.
어느 여인의 자서전을 구해와서 정신없이 읽어내긴 했는데, 괜시리 우울한건
왜일까? 도서관에다 예약, 대기를 거쳐 두달만에 손에 넣어서, 어젯밤 몇장을
읽다가 잠들고 오늘 왼종일 그 책을 들고 씨름을 했다. 글씨도 작은데 두께가
만만치않은데, 읽는 자세를 연구까지 해야하는 몸으로 다 읽어낸 나에게 놀랍
다기보다 미묘한 이 느낌......
"그냥 좀 그러네?" 내 자신에게 한마디 해본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 한편의 시!
호 수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 이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