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정주 망경대에 올라서

이슬과 노을 2022. 6. 4. 23:49

천 길 봉우리 위에 돌길이 뻗었는데

올라 보니 내 정을 이기지 못하게 하네.

푸른 산은 부여국에 번득이고

누른 잎은 백제성에 어지럽네.

9월의 높은 바람이 나그네를 시름겹게 하는데

백 년 인생 호탕한 기개가 서생을 그르쳤네.

하늘 끝에 해가 져서 뜬 구름이 모였기에

쓸쓸하다. 서울을 바라볼 길이 없구나.                --정몽주--

 

                                                홍무 정사년 일본으로 사신 가서

 

수국에 봄빛이 일렁이는데

하늘가 나그네 돌아가지 못하네.

풀은 천 리에 이어져  푸른데

달은 두 고을에 함께 밝구나.

유세하느라 황금을 소진하였는데

돌아갈 생각에 백발만 돋아나네.

사방을 떠도는 남아의 큰 뜻은

공명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네.

평생 남과 북으로 떠다녀

심사가 점점 뒤틀리는 것을,

고국은 바다 서쪽에 있는데

외로운 배는 하늘가에 있다네.

매화 핀 창가에 봄빛이 이른데

판잣집에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홀로 앉아 긴긴 날을 보내니

어찌 집 생각 괴롭지 않겠나?

                                              --정몽주--

                                        봄

봄비 가늘어 방울을 짓지 못하니

한밤에야 희미한 소리 들린다

눈 녹아 남쪽 개울물 불어나리니

풀싹은 얼마만큼 돋아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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