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낡은 별장의 여름 정오

이슬과 노을 2023. 3. 20. 23:36

백살이 된 보리수나무와 밤나무 들은

더운 바람에 살랑이며 숨쉬고

분수의 물은 바람결애 반짝이며 고분고분

방향을 바꾼다. 둠지에 깃든 수많은

새들은 이 시간에 거의 말이 없다.

제 바깥 도로는 정오 무더위에 조용하고

개들은 풀숲에서 늘어지게 잠들고

건초 마차들은 뜨거운 땅을 통해 멀리서 덜컹댄다.

 

우리 늙은이들은 그늘 속에 길게 앉아 있지.

품에는 책을 끼고 부신 눈은 내려깔고,

이 여름의 오늘에 요람처럼 친절하게 흔들려도

속으론 앞서 떠난 이들을 생각하지.

겨울이든 여름이든 그들에겐 날이 밝지 않지만

그런데도 전당이나 길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 곁에 와 있는 이들은

그곳과 이곳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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