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얘요?"
"뭐긴 뭐야 꽃이지!"
돋보기를 쓰고 열심히 미싱을 하는 내게 불쑥 방문을 열고는 내 얼굴앞에
꽃다발을 들여밀던 그 사람은 문을 닫아주고 안방으로 들어갔던가?
그런데 나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었고....
내가 34살 때였다고 가끔 떠오르는 기억! 처음으로 받아본 꽃다발인데
뭐라고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을텐데 "아무튼 고마워요" 라고 했으면
오히려 의아해 했겠지? 아마도!
아들이 일학년때, 그 담임이 하필이면 남편의 제자의 언니임을 알고는
그녀의 결혼식도 참석하게 되자, 아들이 손뼉치며 좋아라 했었다.
"...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우리선생님 하고 친한거네?"
운동회때 그녀가 내게 살짝 말해주었었다. 수업시간에 아들이 불쑥 교탁앞에
와서 턱을 괴고 말했다고 ....
"선생님! 그제밤에 우리엄마 아빠가 얘기를 했어요."
남편은 내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면 무조건 그런다. "뭔지는 몰라도 심각한
얘기는 토요일에 합시다. OK?" 그렇게 출근해버리면 나는 또 그 토요일까지
참고 기다렸었다. 물론 맥주 몇병과 마른안주를 밥상에 차려 "그 토요일 면담"
을 하는데, 주로 내 불만사항을 조목조목 풀어내며 내 스트레스 해소방법인데
아들도 그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낀모양! 결국 그가 사과를 하고 내가 용서
해주는 순서? 나는 조용하게 참아내고 조용하게 따지는 스타일이었다.
"당신은 말이야. 그 침묵으로 사람 쥑이는 거 알아?" 아주 훗날 그가 한펀치
날리는 바람에 내가 좀 달라져간듯 하다. 평생을 "모르기만 하다가 살아왔구나"
빗발이 오락가락 하는 오늘 내내, 나는 왜 그 "한평생"을 더듬으며 바늘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있나 싶다. 그가 내게 들킨 한 모습!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지휘할때의 그 모습이었다. " 이건 말이야,
가요가 아니라 명곡이야. 내가 열심히 준비해둔 곡이야." "님 그림자"
어쩌다 그 노래가 들리면 내 가슴은 한참을 쿵쿵거리며 목이 메인다.
잘한 일보다 못해준 일이 더 많아서이지 싶다. 그러게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외아들 유학시킨다며 기러기아빠를 만들어준 내 용감한 도전때문에....
이 며칠을 나는, 너무나 고운 모시다포를 한꺼번에 잘라놓고는 열공하고 있다.
6점을 벌려놓고 완성되어가는 그 성취감뒤에 그 사람의 모습이 겹쳐보이는듯
하다. 아낙들의 그 베짜는 모습과 천연염색까지 거쳐서 이토록 고운 색상으로
태어났고,나는 또 연잎으로, 그 줄기로 모양을 다듬어 몇일동안 무아지경
으로 바느질에 빠져산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