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장마도 아닐것 같으면서도, 베란다를 통해서 비를 자꾸만 내다본다.
그러면서 또한 옛날의 장마는 어땠었는지 흐릿하지만, 상쾌한 풍경은 아니었던것 같다.
갑자기 비가 내려쏟으면, 뒷집, 옆집 아저씨들은 모두 비옷(?)을 두르고 급히 논밭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집은 농사와 상관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비옷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모르지만, 넓은 치맛폭처럼
짚으로 엮어 어깨를 두르면 흡사 망또같은 모습이 되고, 또한 그들은 한손에 큰 삽을 들고 가는 똑같은 차림이었다. 그러나 머리에 쓰고 나가는 모자또한 짚으로 엮은것이라, 밀짚모자라고 불리던 그 모자는 후에 유행가 가사에 포함되기도 했었다.큰 삽은, 지금 생각해보니 논밭에 빗물이 모이지 않게 고랑을 파내는 역할이었던것 같다. 그 모든 것이 머리에 남던것은
이웃의 고생을 신기하게 보던 철부지여서, 미안한 줄도 모르고 지켜보던 풍경을 연출하던 나 속의 나였다.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내가 어디 재미있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옛날이라 불평할줄도 모르고 그냥 눈에 띄는 모든것을 눈여겨 보는 따분한 시절, TV, 신문도 접할리 없는채, 시골생활은 지금 돌아보면 불편함 투성이였다. 더구나 동네에
구멍가게조차도 없어서 필수품인 빨래비누도 멀리 한시간 넘게 걸어가야 기차역근처의 시장에서 필수품들과 함께 사서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짠 했던 기억이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잡은 우물가에는 항상 붐비고
모두의 식수이니, 물동이로 그 물을 퍼서 날라다, 밥을 하고 아끼면서 식수로 하던 아낙들! 제법 커다란 우물하나가 동네
효자였다. 역시 짚이나 헝겁으로 돌돌 말아서 머리에 얹고 물동이를 이고 걷는 모습은 모두들 익숙했고, 그 우물을 빙둘러
물을 퍼올리는 사람들끼리 어깨가 부딪힐만큼 붐볐고, 그 한켠에는 빨래를 하는 모습, 투박한 일복이나 무명한복도 새까만
"--표" 빨래비누로 주물르고, 또 방망이로 열심히 두드리고, 몇번을 헹구는 모습들! 그 누구도 수다떨 시간도 없었던지, 피곤했었던지 그냥 뚱한 표정으로 분주히 돌아가는 우물가 풍경! 전혀 일을 시키지 않던 엄마여서 나는 그중의 일원이 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어쩌다 급해서 물을 푸러 가야했을 때, 나는 그 깊고 깊은 우물속을 내려다보면서 움추려들었었다.
그 우물속은 으시시 할만큼 깊어서 한두레박을 퍼올리려면 여러번, 한참을 씨름을 해야했다. 그 밑바닥의 물에 내 모습이
비취는지 발꿈치를 들고 애를 써보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는데, 신기하고 궁금했던 것은, 엄마가 그 무리중에 섞여있는것을
여간해서 보지 못해서 "왜 우리엄마는 저기에 없을까?" 했었다.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 혼자 결론 내렸던 것은, 우리 엄마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가한 시간에만 이용했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해가
되면서 또한 짠했었다. 19에 시집을 가면서 바로 일본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5명의 아들 딸들을 낳아서 키우다가 해방되던해에 한국에 돌아왔고, 그 당시에 찍은 사진속의 엄마는 얌전하게 머리를 쪽지고 하얀 투피스를 이쁘게 입고 사진관의 커다란 의자에 손을 얹고 서서 찍은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고, 아버지는 큰 사업가였고, 사슴농장에서 찍은 단 한장의 독사진!
그 아버지는 아주 멋지고, 양복조끼주머니에 동그란 시계를 늘어뜨리고 있어서 엄마에게 물어보았었다. 최고의 멋쟁이였다고 꼭 한마디만 해주던 엄마는 그렇게 얌전했고, 특이한 환경을 거쳐왔기에 친구들이 모두 물었었다. "너희 엄마는 일본
사람이냐고" 옛말로 표현하기를 여자중의 여자, 그렇게 불리면서 처음 겪는 시골생활에 그 즈음의 엄마,는 참으로 뼈아픈 시기였고, 이른 아침이나 어두워진 후에 나가서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하고 그랬었다고 눈물이 그렁해서 내손을 잡고 말해주던 때는, 내가 여고3학년때였다. 그것도 내가 애교를 부리며, 떼를 쓰며 옛날얘기를 해달라고 졸라서, 왜 그 우물가에 엄마를 보기가 힘들었던가를 기어이 물어서 얻은 답이었다. 집안에 나와 엄마 단둘이 있을 때! 참 나는 지금 유치하고 불효자식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나는 그런 딸이었을까? 정말 어려울때인 고 3때, 엄마는 아주 강하게 내 대학진학을
고집하며 우겼었다. 그앞에서, 대학안가도 된다고, 우리 형편에 왜 가느냐고 그렇게 하지않았던 내가 너무 싫었고, 기막힌
것은 엄마가 몰래 쌈짓돈을 모아놓은듯 하던 느낌이었다. 나한테 거는 기대가, 사랑이 정말로 컸던 엄마였다는 사실은,미국
몇십년째 엄마산소를 찾지 못해서 더 큰 한이 되어 가슴에 얹혀있다. 이곳에 와서 그 새까만 빨래비누를 못찾아서 매번 마트를 뒤지다가 선반꼭대기 끝에 달랑 두개의 빨래비누를 찾아주는 직원이 설명하기를,그걸 찾는 이가 드물어서 아예 비상
용으로 거기 둔다고 했다. 그런데 상표는 같은데 옛날의 그 검정색이 아닌 푸른색! "----표 빨래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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