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각형안의 이쁜 한옥두채.

이슬과 노을 2022. 6. 29. 00:22

한장의 흑백사진이 되어 나를 아련하게 하는 이쁜 한옥집이 내 추억중의 한컷이 되어 남아있다.

거부해도, 가난했던 시절이라 더욱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보다, 혼자 조용히 눈을 감고 더듬어보면

미소속에, 잠시 소녀가 되어 추억한다. 낯선 지방에서 사업을 크게 벌려, 농사짓는 이웃을 보며 시골을 경험하다가 그

아버지가 급히 떠나가셨으니, 엄마가 46세였고, 슬픔속에서도,  나를 고향인 마산으로 가서 중학교 시험을 보게

한 엄마는 이미 가장으로서 혼란스러운 때였을것같은데, 힘들게 합격한 명문학교를 포기하고 정말 낯선 서울

로 옮기기엔 불가능해, 나는 그 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를 다녀야 했다.먼 친척집에 얹혀서 보낸 그 잠시

의 고생이 속상해서 남몰래 울었던 기억! 넉넉한 집에서 가장 사랑받으며 자랐던 내가, 그 친척집의 부엌쪽방에

꾸부리고 자며, 미안해서 아침밥도 먹지않았고, 그래도억지로 넣어주는 도시락까지 사양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내가, 자존심이라는걸 지키려는 의지같은것은 참 가련했던것 같다. 몇달만 참으면 우리집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하는 기대를 안고, 교복을 맞춰입지도 않고 빛바랜 니트하나로 버티던 것은 참으로 이해가 되지않고, 내가 학교에

다가 무어라고 변명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집이 갑자기 거지가 되어버린듯한 자각이 있어서 아마도

내가 최선(?)을 다해 설명하면서 기어이 교복없는 초라한 아이가 되기로 굳게 결심한 덕에, 그 한학기를 보냈고

이미 서울로 이사한 엄마에게 갈 수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다. 나는! 우리집에 돌아가서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다니고, 눈치보며 아침밥을 굶지않아도 된다며 스스로 대견해했던것은 목메이는 기억이다.

지금도, 아니 너무나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장 이쁘게 고생했던 부분이다. 어떻게 구했는지 우리는 아주 이쁜

한옥독채! 그리고 대청마루를 차지하고 예쁜 부엌에 유리문이 달려있고, 작지만 마당에서 수돗물을 틀어 마음껏 

빨래도 하고, 시멘트마당을 빗자루로 박박 밀어 청소하면, 너무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내모습이 내 기억에

또 이쁘게 남아있던 사각형 그 집은, 두채의 독립된 집이었다.사각형안의 중심에, 시멘트담장으로 낮게 구분지어 수도를

함께 쓰던 불편도 상관없이 나는 너무나 행복했었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는 몰래 눈물을 닦던 모습을 보면서도

모른척 했었다. 구색은 제대로 갖추고 모양도 이쁜 그 미니한옥에서 살게된건, 엄마의 노동의 댓가였고, 그집주인이 

멀리 이사하면서, 아들을 서울에 머물게 하고싶어 그 아들을 하숙시켜주는 조건으로, 전세도 월세도 아닌 그냥 공짜로

살기로 하고 입주한듯 했는데, 이상하면서도 굳이 묻지않고, 그 조건은 열심히 의식하며 조심하기는 했다.

여중생인 내가 고1짜리 남학생과 한집에 살면서 당연히 불편하긴 한데, 모든것을 다 참아낼 수 있는양, 엄마에게 보이고

싶어서 쿨한척 했지만 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 남학생을 깨우고 작은 밥상을 방안에 들여밀던 엄마를 볼때, 그애가 학교

에 가고나면 그 방을 청소하고 빨래거리를 들고나와 열심히 빨아널고 하던 엄마모습이 속상해서, 애써 보지않고 싶던 나는

표정관리가 힘들긴 했었다. 우린,안방하나만 쓰니까, 나는 엄마에게 강조하고 약속까지 받아내었다. 대청마루가 내 공부방이고 내 방으로 해 달라며! 그리고 엄마가 마련해준, 의자있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이쁘게 깔아준 이불속에서 마냥 행복했었다. 책상에 앉아서 보는 작은 창문에, 짙은 푸른색 천으로 커텐을 만들어 달아주던 엄마를 막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

그 천은 면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화학섬유에 무늬가 놓여있었고, 나는 그 색상과 질감이 손으로 느껴지는듯한 감성이 참 

신기하다. 지금도 눈에 아른대는 그 미니한옥의 대청마루에 내 공부방! 그 푸른색 커튼! 나는 틈틈이 책상을 정리하곤, 피아노연습을 했었다. 얼마나 그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던지 스케취북에 큼직하게 건반을 그려놓고 거기다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흥얼거렸다. "도레미 파파 솔솔미  ......" 눈을 지긋이 감고 취해있다가  옆에서서 물끄러미내려다보고있는 엄마를 보곤

후다닥 치워버리던 내 모습! 마당한가운데를 나누어살던 앞집 아이를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을 하다가 첫월급으로 하모니카를 사서, 틈만 있으면 그것으로 열심히 독습을 하던 나는 참으로 별스런 아이였다. 스케취북 건반그림은 찢어버리는게 엄마에 대한 성의라고 여겼던듯 싶다. 지금의 애들은이런 감성을 이해할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한옥집이 내게는 이쁘고도 다정했던 소중한 곳이었다. 그 시절의 셋집살이는, 결혼할 때까지 이어졌지만 곳곳의 어느집, 그리고 얼마짜리 전세에서 또

월세로 내려앉고 그렇게 엄마는 조용히 가장노릇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짐작때문에, 가끔 엄마를 어스러지게

껴안고 냄새를 맡아보면 행복했고, 목이 메었었다. 그토록 고생투성이의 엄마의 삶! 나라면 그런 삶을 살아내지는 못할듯한 그 세월을 보낸후 떠나셨고, 나는 이렇게 깊은 밤에, 어이없는 감상같은것으로 그 시절, 곳곳의 셋집살이 등을 사진보듯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뒤돌아보고 있다. 그 시절, 그 순간순간이 힘들었어도 나는 참 행복하게

가슴에 담다가 결혼으로 엄마를 떠나올수 있었기에 이런 밤이 이나마 아련해질 수 있는것 같다. 추억은 아름다울 수 있고,

그 아름다움은 어떻게 간직하고 왔느냐에 따라 행복한 것이 아닐까 싶다.더구나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 아무런 기대도

하지않고, 인정하고 체념한채 책만 미친듯이 읽어대고 있으면서, 이런 추억을 더듬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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