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 누구든 해주고 싶은 한마디.

이슬과 노을 2021. 12. 8. 01:30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고 지키라고,

자신의 건강을 너무 믿지말고, 방심하지 말기,

좋아하고, 하고싶고 하는것들에 너무 쏠리거나 집착하지 말기,

나는 너무나 일을 사랑했고, 그리고 혹사에 가까운 열정을 바치며, 내 건강에 방심했던것 같다. 새벽에 뻥 뚫린 고가도로를 달리면서 그 바깥에 황홀했던 참으로 멍청한 얼간이였다. 몸을 기대지도 않고, 몇시간동안의 응급실기억이 너무나

끔찍하고 싫어서,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돌아와서 이불속에 들어갈때까지 내 입에서는 감사기도와 주기도문이 끊이지않고 새어나왔다. 정신을 놓을가봐 샤워도 충분히 하고, 약도 열심히 챙겨먹고

그제서야 이불속에 들어가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코로나를 이유로 성당에 소흘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덧없고 덧없으니 모든것이 덧없다 하여라" 라는 말이 떠오른다.누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면, 남에게 충고를 쉽게 하는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지만,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을 얘기하고 싶다. 누가 나를 정상으로 볼까 싶을만큼 난, 내가 이상함을 알지만, 무섭게 긴장하고 버티며 혼자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혀밑에 두알의 약을 녹히고 다 녹으면 또 넣어 머금고 있다.돋보기도 거북하지만 컴을 만지고 싶어서 벗지않는다. 어제는 이시간보다 3시간 전에 나는 한 의자에 고정되어, 혼자 처치를 하며, 응급실에 가지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두시간을 버텨도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혼미해질때야 위기감을 느끼고 무서워졌다. 눈을 뜰 수가 없이 집안은 뱅뱅돌아가고 나는 더듬어 핸드폰에 119를 눌렀다. 그들이 문을 따고 들어왔을때야 그들에게 기대어 늘어졌다. 자꾸만 나를 깨우고 말을 시키던 그들은 정말 노련하고 충실한것 같았다. 당연히 오늘 병원에 가서 첵크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가만히 하루를 보냈다. 가기 싫었다.무슨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무서웠다. 응급실에서 준 약을 열심히 먹었는데도, 어제의 그 시간에 또 나를 찾아온 손님! 똑같은 상황에, 재빨리 처치를 하며 컴앞에 앉았다. "겁많고 여리고 물러터져서 너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래?' 엄마가 언니가 걱정하던 내가 아니고 나는 지금 씩씩하다. 청심원부터 마시고, 손가락을 모두 찔러 피를 최대한 많이 짜내고 그리고 알약을 머금으며 컴을 두드리는 나는, 천치 아니면 미치광이일까? 어제밤에 정신이 들자마자 떠오르는 내 블로거! 어제 하루 결석을 했지만, 오늘은 심해지기 전에 블로거부터 찾아온, 내게는 밤마다 진솔해지고, 고운 시를 감상하고 

그렇게 내 친구였다. 오늘에서 멈추어지지 않고싶은데 나는 그 가능성을 품고 있는걸가 하는 의구심이다. 너무 앞질러

고민하는것도 바보다. 오늘을 이겨내면, 난 내 몸의 이유를 알지않고 살고싶다. 항상 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며

살아온것만 유일한 장점이었다. 마루에 요가 매트를 깔고 색동미니벼개를 함께 놓아두고 허리가 너무 아플때 잠간 펴주다가도 어느새 나는 그마저 외면해버린다."엄마! 시간이 금이지? 응?" 어릴때 그 힘든 미국시절에서도 불쑥 나오는말에 둘이서 함께 놀라고 그리고 마구 웃어대던 시절, 그때는 나는 갈등할시간도 없이 용감했고 아이는 커갈수록 이상한

말을 내게 해서 나를 경악하게 했다. 내가 좀 큰소리로 웃으면 "엄마, 마약했어?" 밥을 먹으면서 조용히 말하던 아들은.

기절하게 놀라는 내게 "뭐 그럴수도 있지"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미국아이가 될까봐, 너무나 싫었던 나는 호되게 야단을 치고 반응하면서 살아내었고, 아이는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너무나 보수적으로, 한국식으로 커 주었다. 오늘 낮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에 놀라면서도 태연하게 받았다. "엄마, 감기는 좀 어때?" "응, 벌써 다 나았지. 걱정하지마, 고마워" 그러면서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지만 나는 절대 표내지 않으려는 모정을 지키고 싶었다. 이어서 다음주사는 언제 맞느냐는둥

익숙치않은 말들을 계속하는 아들에게 고맙기만 할 뿐! 나는 내 의지대로 침묵을 지키는 엄마로서 살아가고싶었다.말을 길게 하지않는 아들이 무슨 일로, 하필 오늘에 전화를 하고, 안하던 친절을 베푸는가 싶어 잠시 멍했다. 결국, 나를 스스로 위로한다. "내 자식이니까 무언가 느낌이 전해지는 걸거야. 힘없이, 아픈 모습을 들키게 하는건 내 방식이 아니야"

길게 이어지는 글이 신기하다. 어제보다 몇배 긴장하고 재빨리 처치한 덕분인가? 이제 내 정신으로 응급실은 가지 않을거야 싶은 처절한 몸부림같은것이래도 이만큼의 상태가 너무 신기하다. 컴옆에 흩으러진 잡동사니가 기막힌 꼴이다.

피묻은휴지, 청심원빈병, 피따는 침, 그리고 계속 번갈아 녹히고 있는 약병,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지만, 의자에 눕다시피하고 컴을 두드리는 내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완벽한 나 혼자를 너무나 사랑한다. 내 이 공간이 또한 좋다. 거실의 곳곳에 마른 낙엽을 담은 바구니가 있어서 또한  좋다. 바보처럼 혼자 웃어도 누구때문에 그런 짓도 못하는게 아니라. 내마음

대로 즐기는 이 자유가 너무나 좋다. 명품이나 백화점과는 멀게 살아왔지만 내 인생은 용감했다. 이렇게 혼자 아프지만

하필이면 오늘에 걸려온 전화와 관심이, 세상에서 그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자식의 존재감을 느껴서 좋다. 가끔 내 작품을 물어보는 관심에도 너무 행복했었다. 이민생활의 피맺힌 고생을 둘이서 똘똘뭉쳐 헤쳐나갔기에 우리는 남다르다.

누가 감히 나를 불쌍하다고 할건가? 내 기준과 방식과 가치관대로 살아왔는데, 내가 몇달걸려 완성하는 유물재현작품을 절대로 팔아보지 않던 내 고집에 만족한다. 모교에 기증할 가장 큰 작품을 액자에 넣어 가져가려고 하는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 나머지는 내가 떠난후에 자식이 나를 추억하며 바라보겠지 하는 상상만으로도 좋다. 내 작품의 의미를, 가치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망설임없이 선물할거다. 자식이 내 작품에 욕심을 가지지는 않을테니까! 그냥 엄마가

예술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주었을때 충분히 효도를 한거였다. 나는 철저한 혼자지만, 언젠가? 하면서 따로 모아가는 원고가 제법되지만 꼭 출간을 하지않아도 좋다. 나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는 작업을 통해서 충분히 위로받고 덜 외로우니까! "니는 그렇게도 혼자가 좋으면 산에 올라가 스님이 되지 그랬나?" 그렇게 표현하던 엄마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나는 자정을 넘어가는 순간에 너무 짜릿했었다. 그리고 1시, 2시 내멋대로 새벽을 즐기던 나였지만 어제 응급실에 다녀오면서 힘든 결심을 했다. 새벽을 좋아라 하지않고 수면시간을 늘리자 하는 생각은 내 건강에 대한 위기감덕분이었다. 일찍 블로거를 하고, 낮에는 독서를 하고, 발길을 끊었던 도서관직원이 내 말을 듣더니 빌려가는 책을 한권씩 소독을 하고 드릴수도 있다고 해서 다시 도서관의 책을 마음껏 빌려보기로 했다. 단 무리한 독서는 삼가하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모르고 

싶어도 오늘 다시 증세가 심한것을 느끼며 이미 내 건강에 적신호를 부인할수는 없고,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도 모른다.

누구든 내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있으면, 나는 건강을 강조하리라 생각한다. 건강을 잃으면 그 무엇이 있을까? 

나는 철저한 혼자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건강과의 이별은 가슴아픈 일이다. 다시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착하게 건강을 챙기면서 살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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