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

이규보의 한탄

이슬과 노을 2023. 2. 6. 23:49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으며

지위 또한 삼공에 올랐으니

이제는 문장을 버릴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노래하고

밤에는 솔개처럼 읊노라.

떼어버릴 수 없는 시마가 있어

아침저녁으로 남몰래 따르고는

한번 몸에 붙자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네.

나날이 삼간을 깍아서  몇편의 시를 짜내니

기름기와 진액이 다시는 몸에 남아 있지 않네.

앙상한 뼈에 괴롭게 읊조리는 내 이 모습 참으로 우습구나.

남을 놀라게 할 문장으로 천 년 뒤에 물려줄 만한 시 못 지었으니

스스로 손뼉 치며 크게 웃다가  문득 웃음을 멈추고 다시 읊는다.

살거나 죽거나 오직 시를 짓는

내 이병 의원도 고치기 어려우리.

'옛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접련화  (0) 2023.02.09
파주문월  (0) 2023.02.08
삿갓을 읊다  (0) 2023.02.04
!!!  (0) 2023.02.01
잘 가는 자는 바퀴 자국이 없고  (0) 202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