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이기적이라고 자책하면서도 철저히 사람들을 멀리하던 내가, 무서운 통증을 못이겨서, 미니 자동차(?)를 끌고
가시던 할머니를 붙들고 애원처럼 물어보았다. "이 동네에 용한 한의원을 혹시 아세요?" 서슴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준대로 찾아들었다. 할머니 말씀이 한달 침을 맞고 한약을 먹고 아픈걸 이겨내고, 이제는 아프지는 않은데, 두 다리가,걸을 힘이 없어 할수없이 이걸 타고 다닌다고 하셨다. 연세가 90으로 접어든 할머니의 자세한 설명에서, 내가 그렇게
호전되리라는 기대까지도 아니고, 단지 입을 앙다물게 하는 무서운 통증이 가끔씩 잠깐 1분씩이라도 쉬어준다면 하는
작은 기대로 시작한 한의원! 5일을 다녔다. 어딘가를 매일 다녀야하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힘들고 낯설고, 없던 일이다.
수술후유증도 아니고, 그 다친다리에 의지해야만 할만큼 다른쪽에 덮쳐온 통증은 나를 아연하게 한다. 예민해서 집을
나서는 준비가 철저하게 완벽한 나는 현관을 나서면서 벌써 숨이 차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콜택시를 부르고, 워커를 접어서 기대고 있다가 타면되는데, 그 워커를 보고 짜증을 내며 승차거부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나는 몸이 경직되고
워커를 얌전히 접어서 꼿꼿하게 서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처량한 신세다. 돌아올때도 길에서 콜을 불러 타는 내게 한의원을 오고가는 일이 힘들리가 전혀 없는데도 돌아오면 누워버린다. 병원과 다른 물리치료는, 20여개의 침과 함께 다섯가지 한방치료는 의사와 간호사얼굴을 볼 필요도 없이 한켠으로 돌아누워서 시작되고 끝난다. 생각하면 추락의 과정이다.
그곳에서 나는 야단도 맞고, 경고도 들었고 걱정스런 말도 들었다. 의자에도 앉지말고 필요하면 서성이면서 해결하란다.
그래서 지금 나는 부엌에서 휠체어로 해결하던 일을 접고, 서성이면서 밥상을 차리고, 서서 밥을 먹다가 뉴스가 시작되면 서서 본다. 깜깜이 TV 이던 게 아픈바람에 뉴스만 허락하고 .... 참으로 처량한 일상이고, 얌전해진 내 모습이다.
사람들속으로 들어와본 내가 겨우 10명 안팍이지만, 그래도 내겐 큰 변화이고 벅차다. 이 일이 얼마나 계속될지 의문이다. 치료가 끝나면 의사선생님이 워커를 내 앞에 펼쳐주고, 간호사들에게도 지시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연신당황
스럽다. 왼쪽은 할 수 있는데 오른쪽은 구부리지 못하고 양말을 신지못하니까 간호사가 신겨준다. 결국 발을 맡기고 양말을 신겨주는 간호사 머리를 내려다보아야 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면 또 누가 얼른 와서 신겨준다. 도무지 내가
무얼하고 있나? 이런 도움을 받으러 오려고, 집에서 혼자 동동거리는 일은 더 복잡하다. 매일 완벽하게 바꿔입어야 하는
옷들이 침대에 쌓인다. 샤워를 하지않고는 나서지 못한다. 예의가 아니라며.... 나는 왜 이리 복잡하게 살아내야 하는가?
5일동안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항을 묵묵히 실행하기는 하는데, 목이 메인다. 어제 선생님이 등뒤에서 침을 꽂으며 한마디 하셨다. "어머니는 좀 심각합니다" 그 말을 지나가는 말인듯 해주었고, 나는 그 말을 파고들어 질문하지 않고 혼자
거듭거듭 생각만 하고 있다. 그에 대해 얘기를 죽어도 물어보지 못하겠어서! 그냥 열심히 다니기만 하자. 그 마음이다.
오늘 집에 돌아올때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인데, 집에 와서 시계를 보니 꼭 40분이 걸린거다.
덜덜거리며 요란한 워커를 밀고 걸으려면 길이 너무 거칠다. 두 손과 어깨가 너무 아프다. 매일 하던 걷기를 5일동안 못하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러면서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너무 과한 도전이라는 생각! 워커 손잡이에 묶여
있는 비닐봉지의 딸기도 그대로 둔채 자정이 되도록 잠을 자 버렸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내 마음을 풀고 있다. 선생님얼굴이 떠 올라 비밀스런 짓은 못할것 같고, 다시 택시를 택하고 말없이 다니자 그런 심정이다. 걷는 바람에 지나쳐온
큰 가게에서 딸기 한봉지를 사서 묶어달라고 하는 나는 너무 뻔뻔해져간다는 생각! 워커를 보고는 모두들 친절하게 묶어준다.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모님처럼 편안하고, 워커손잡이에 무어든 묶어달라고 말하며 태연한 나!
결국 나는 무례하고 염치없고 그렇게 되어가다가 어디쯤에서 달라질까? 마지막 염원은! 갖고 다니던 지팡이를 짚고서
버스와 전철을 바꿔 탈 수있고, 서울의 광장시장도, 교보문고에서 한달에 한번, 책을 훑어보던 내가 되고 싶다. 더 이상은
인사동이나 경복궁, 그리고 일년에 한번 겨울바다를 만나던 그런 사치는 내게 없다는걸 안다. 번갈아가며 내곁에있어주고, 겨울바닷가를 함께 걸어주던 절친과 남편도 내 곁에서 사라져주었으니 엄청난 망상과 착각이 아닌가? 아까 딸기를사면서 들여다본 가게 안에서 상치와 생선이 눈에 띄지만 참았는데 이 깊은 밤에 그 상치가 먹고싶어진다. 모든건 내게서
멀어져간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매일같이 내 몸을 맡겨둔채 다섯가지 치료를 받는 일정이 잡힌 나약한 존재일뿐이다.
침이 따갑고, 몇가지 과정이 힘들때도 있지만 "아얏"소리가 나오다가 삼켜진다. 우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엄살은 부리기
싫다. 내가 좀 심각하다는 한 마디만 하고 선생님과 나는 더 이상의 질문도 대답도 없이 지나가고싶다. 겨우 5일을
드나들다가 몰래 40분을 걸어 돌아온 오늘의 나는 참 용감했고 선생님에게 미안하다. 나는 이제 뭔가를 시도하고 일을
저지르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침을 맞으려고 결심하고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어 찾아온 것은 내게 마지막 희망
이었다. 어제 사모님이 워커에 묶어주는 "부지깽이"를 보면서 너무 좋아했었다.바닥에 뭔가 떨어지면, 손이 닿지않아, 굽혀지지 않아 두발끝으로 집어올린다는 말을 듣고 내게 선물한 그 부지깽이가 너무 반갑고 대단했다. 내 머리는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알았어도 시장에 갈 수도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좋아했던가 싶다. "내일일은 내일에 생각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까지가 아니고 단순무식하게, 얌전하게 살아야하는게 내 몫이라고 생각하자. 그 분홍색 손잡이의 부지깽이는 그것도 새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참 재미있다. 순간순간이 던져주는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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