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있어서, 무대연출일을 했더라면? 하면서 웃는 하루였다. 특별한 날이었다.
혼자서도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살수 있는거구나 싶다. 누가 내 모습을 몰래 보았다면 기막혀서 웃었을것같다.
오늘은 온통 천경자화백의 날이었다. 얼마전부터 불쑥 떠오른 생각에 그분의 그림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나는 히한하게 병이 걸려 심하게 앓고 있는데, 이틀걸러 병원을 기듯이 다니면서 주사를 맞고 보름을 지나도 더 심해지고 있다. 며칠전에 조금 수월하다 싶어 낙엽도 줏고, 무리한 목욕을 하는 바람에 다시 중환자가 되어버렸다. 알아서 약을 바꿔주시는 선생님이 왜 그리도 고마운지 연신 절을 하며 6일분약을 부탁해서 돌아왔지만 막막했다. 오늘은 얌전하게 바느질로 달래고 있다가,불쑥 미술관가는 방법이라도 확인해두자고 전화기를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인터넷에 들어가서는 그만 몇시간을 보냈다. 예약여부와 위치를 찾다가 그분 싸이트에 푹 빠지고, 그리고 눈에 띄는 시낭송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 시는 유안진님의 시였다. 천화백의 싸이트안에 실린 시여서 그 시를 베껴적기로 하고 작업대와 컴의 의자로 오가며
열심히 적어도 워낙 명필에다 손글씨도 써보지 않고 사는 터인지 겨우 80% 적고는 포기했다. 그 시는 왜 그리도 절절한지 너무도 탐나서 욕심은 대단한데, 저녁을 11시 다 되어 먹는둥 내 시간이 온통 억망이 되면서 느끼는건, 모두가 세월,
나이탓이구나 마음만, 욕심만 가득하구나 하는 씁쓸함이다. 무대위에 올라가, 시낭송을 할 준비를 하는 여학생도 아니고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앞에 줄지어 기다리는 4가지 약을 쳐다보며, 자꾸만 터져나오는 웃음이었다. "사는게 참 웃기는 거로 시작해서 웃기게 끝나는거 앙이가?" 경상도 사람들이 잘 쓰는 한귀절이다. 나는 이 작은 공간에서 나름 위로하며 사는 대사가 있다. 혼자 끙끙대다가도 혼자 달래준다. "그래도 이런 처지가 얼마나 감사한데? 아무도 내 시간의 1분도 방해하지 않는 이 오롯한 자유가 있는건데?" 이번에 호되게 아프면서 처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팔을 뻗어 착각같은 헛소리를 했다. " 나 물하고 약좀 갖다주면 안돼?" 나도 모르게 중얼대고는 휭했다. 많이 아프면 이렇게 헛소리도 하고, 전화기도 안들고 119도 눌르게 될거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의사앞에 앉으면 말할 힘도 더 없이 엄살을 부리는가보다. 다행히 의사가 너무나 스마트해서 내게 말을 시키지도 않고 연신 이곳저곳에 청진기를
열심히 대어보고, 입안을 들여다보고 고개만 갸웃거리고 딱 한마디만 했었다. "약을 바꿔드릴께요" 어제는 워낙 이쁘다가 더욱 이뻐보였다. "큰 병원에 가보시죠" 할까봐 겁을 내던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이비인후과만 열심히 찾다가 결국 돌아왔었고 그 전 병원에서 내몰리다시피 한 처지였다." 아니 이런상황에 왜 여기로 오세요? 빨리 대형병원에 가세요
주사도 한대 안주고 보내는 바람에 정신이 들면서, 매달 다니는 내과로 찾아들었는데, 의사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않고
주사와 3일분약을 주며 나를 궁금하게도 안심하게도 해주는터라 감사하며 다니는데, 이래서 사람마음은 참 요상하기도
하고, 더욱이나 나는 정말 괴상한거다. 언제 몸이 낳을지도 모르면서 그래도 천경자화백의 그림을 보겠다고 준비를 하다니.... 내가 너무 마음이 허해서인가? 다시 얌전히 바느질을 하는데, 워낙 산만했던지 바느질땀이 마음에 들지않아
자꾸만 뜯어내고 다시 다듬고 하다가 그마저 포기하고 컴에 앉는다. 그래도 천경자화백에 대한, 오랜세월 혼자만의 관심과 동경과 존경심을 가졌던 소녀시절부터의 기억으로 돌아가 더듬어보면서 그분의 특별한 글솜씨에 반해 그 에세이집은
모두 읽어대며 자세히 다가가던 분이었다. 그래서 그 위작사건도 큰 사건이며, 절필을 선언하고 모든 작품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나신다던 신문기사로 서운했었는데, 곧이어 타국에서 큰병환으로 지내시는등, 6년전에 별세
하신 그분의 삶은 굴곡지면서도 내게는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오늘은 너무나 깊이 그분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빌려가면 돌려주지않는 독서문화때문에 모두 잃고도 남은 두권의 책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요절한 어느 여작가의
책 뒷면에 다른 작가가 쓴 한 귀절이 불쑥 떠오른다.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잠깐 멋스럽게 들렸지만, 90세까지 천화백의 삶이 그토록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이루어낸 작품세계를 끌어안고 사시면서 써내는 에세이집을 통해서 그분은 또다른재능을 보여주셨다. 오늘 하루가 어수선했지만, 호되게 아프면서 경험한 또다른 자극이었다. 바느질하면서 계속 귀로 듣던 그분의 수필중의 일부분을 읽어주는 동영상에서 더 감동받은 그분의 글솜씨였다. 나의 이 작은공간안에서 나는 헛소리도 하고 혼자 웃고 달래주고 하면서 바늘을 손에 쥐며 노후를 준비해왔었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감사한다.
생각의 전환, 체념이나 긍정적마인드를 가져야만 하겠지만, 아직도 컴책상옆에 놓여진 작업대는 내가 열심히 빛을 가려주고, 보호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항상 확인하며 주어진 찬스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있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내게 변화는 올 것이 없고, 가진 재능과 관심으로 나를 채우고 다독이며 사는일만이 남은것같다. 컴에다 풀고, 모아둔 원고를 가지고 포스팅하고, 또 다른 책을 읽어가며 자신에게 틈을 주지않고, 시간에만큼은 철저하게 인색하게 살게되는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에 흠뻑 취하다가 살짝 다가선 감기로 여기고 얌전히 기다려야겠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호되게 아파내면서, 갖은 상념이 다가오고 지나가면서 나를 가르치는것 같다. 겸손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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