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농부의 땀과 눈물

이슬과 노을 2021. 9. 28. 01:55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아파트 건늘목 옆에, 가지가 후하게도 담긴 소쿠리가 나란히 있었다. 거기에는 아낙둘이 가지를 사고 있었다. 내가 다가서며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묻자 그녀들이 "2000원이래요" 말해 주는데, 나는 또 싱겁고 바보같은 멘트가 나와버렸다. "아니, 왜 이렇게 싸요? 미안해서 못 먹겠네" 몇십년동안 이어지는 그 말은 고쳐지지도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그녀들이 서로를 두드리며 마구 웃어댄다. "미안해서 못먹겠대!" 한참 어른인 내 얼굴도 보지 못했던지

편하게 웃어대는 순간,  나는 무시해버린다. "이런, 한심한 매너들이라니!" 바보같고 낯설어도 나는 그 말을 창피해하거나 고치고 싶지 않다. 다만 상대를 무시해버리는 습관이 따를 뿐이다. 세식구에서 두식구로 그리고 혼자 사는 나에겐 , 후하게 많은것이 반갑기만 할 이유가 없는 당연한 내 생각이니까! 모두들 길에서 파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더 

싸게를 원하며 깍아대거나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화가 나곤 한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길에서 파는 물건의 반도 안되는 양을 두배나 더 비싸게 가격이 붙어있어도 당연한듯 사는 큰마트 고객들! 바깥에서는 무조건, 당연히 흥정하는 모습들을 봐오면서 나는 항상 씁쓸하다. 내 단골인 이쁜 그 여인에게 살짝 말했었다. "왜 이렇게 싸게 파세요? 너무

하쟎아요?" 그런 내게 허탈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두들 더 욕심을 내고, 싸게 파는지를 인정하지 않고, 사지도 않은데 어떻하겠어요? 억지로 한웅큼 더 뺏아가는걸요?" 나도 이제 슬슬 익숙해가는듯 하다가 오늘 가지 장수 앞에서 나는 

또 한번 언쨚았다. 그것은 잠시일뿐, 주인과 아낙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좋아라 웃어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누런 푸대자루에 반쯤 담긴 가지를 그냥 가져가라고 하는 남자에게, 놀라고 까르르 웃어대며 끌고 가는 모습! 어이없어 그 사람을 쳐다보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2000원에 한소쿠리를 팔고나서 난데없이 그 푸대자루를 주어버리는 남자가 어이없을 뿐이다. "아니, 이거....." 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는 나는 아들얼굴이 떠올랐고 그 사람은 키도 아주 크고 체격도

좋은 40대쯤으로 보이고, 얼굴은 땀에 젖어 억망이고 표정또한 야릇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글쎄 제가 왜 이러는지 아세요? 뒤집어 엎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오전내내 가지따느라 혼나고, 힘들게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자는데, 저렇게 후하게 많이 담아 이천원에 팔아도 그나마도 더 달라고 하거나, 손님도 없고.....  살기가 싫고

세상이 싫어지네요. 제가 바보같죠? 그놈의 코로나가 혹시나 혹시나 싶어 수확을 미루고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하는 제가

참 한심한것 같아요.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요?" 그 남자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쏟아질것 같고, 이지러진 얼굴을 대할수가 없어 시선을 비켜 멀리를 바라보았다. 잠시후 다시 올려다본 그 얼굴은, 소매로 닦았는지 눈물은 없었지만 여전히 "어머니, 글쎄요...."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편하게 해주고 싶어지는 내 마음도

함께 아파졌다. 농사의 어려움, 세상이 너무 험하다며 엄마 대하듯 마음을 털어놓는 그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처음 보는 난데, 나이가 있어보이고, 엄마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진실해보이고 고마워졌다. 그가 울컥하는 마음에 두 아낙들에게 주어버린 그 푸대자루에 담긴 가지를, 깔깔대며 웬 복덩이라도 얻은듯 끌고가는 모습이라니! 아마도 그 가지는 열두어집이 저녁반찬으로 쓰고도 남을만큼 많은 양이었다. "너네들 왜 사니?" 그 607동에 가지 파티가 열리고

머리가 텅 빈듯한 두 아낙들이 떠들어대는 모습이 함께 연상되면서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크게 숨을 내 뿜으면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는 그를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그 남자의 가족과 어머니가 떠올랐다. 가지를 많이 팔고 돌아올거라고 기다리고 있을텐데! 두 애들이 있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현실에서 가장노릇을 하는 그의 어깨가 참 무겁겠구나

싶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사정을 깊이 알수는 없지만,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땀 흘리는 댓가는 턱없이도 부족한

것임을 그를 통해 느꼈다. 처음 보는 내게 마음을 열어보이며 했던 그 하소연을, 집에 돌아가서 그 어머니에게는 하지

않을것같다. 아니 못하리라. 가지 판돈이 턱없이 적은 이유를 설명할수도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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