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어느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면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 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애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이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