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가 품은 질투심에 관해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종전에 우리가 불편하게 여기던 것들이 다른 측면들을
한층 더 드러내는가 하면, 가장 사소한 여건이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어떤 측면을 항상 발견하게 만든다.
이 새로운 측면들 때문에 우리는 종전에 이미 충분히 보았고 평가했다고 여기던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일정한 견해를 견지하려고 애쓰지만 우리가 견지하는 견해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상반되고 상쇄하는 모든 것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미워하려고 함과 동시에, 사랑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미워할 때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사랑할 때 여전히 미워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믿고 또한 모든 것을 의심한다.
믿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또한 의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한다.
우리는 일정한 견해를 견지하려고 항상 애를 쓰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전혀 없다.
시인들은 이러한 견해를 시지푸스의 고통과 비교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또한 고통스럽고 위험한 길에서 공연히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산꼭대기를 바라볼 수 있고, 거기 도달하려고 애쓰며 때로는 거기 도달할 희망도 품지만,
결코 거기 도달하지는 못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가 바라는 것에 대해 감히 안심할 정도로 다행한 처지도 아니고,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편한 입장도 못된다.
우리는 한없는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는데, 이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지만
그러한 것들은 항상 우리를 피해간다.
-- 시지푸스-- 코린토스의 왕이며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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