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도 생계에 마음 두지 않았거늘 늙고 난 뒤 누가 술값을 아낄 수 있을까.
일만 전을 모두 들여 술 한 말 사는데 돌아보면 우리나이 일흔에 세 살 모자라네.
한가로이 경전과 역사책 뒤져서 취하여 듣는 그대 노래 관현악보다 좋구나.
또 국화꽃 노래지고 빚은 술 익을 때 기다렸다.
그대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려 보세냐.
차가운 방에서 ( 당의 백거이 )
차가운 달빛에 밤은 깊어 방은 고요한데
진주 구슬 주렴 밖으로 오동나무 그림자 진다.
가을 서리 내리려 하니 손끝이 먼저 알아
등잔 아래 재봉하는데 가위가 차갑기만 하여라.
大 雪 ( 조선의 신흠 )
골 메우고 산을 덮어, 천지가 한 세계.
영롱한 옥빛 세상,
반짝이는 수정 궁궐이로다.
인간세상 화가들 무수한 것 알겠지만
음양 변화 그 공덕을 그려내기는 어려우리라.
봄 눈 ( 당의 한유 )
갓 새해엔 언제나 향기로운 꽃 아직 보이지 않고
이월에야 처음으로 풀싹을 보고 놀란다네.
흰 눈이 도리어 봄빛 늦음을 미워하여
그래서 뜰 나무를 뚫고 날아다니는 꽃이 되었다네.
산 속 눈 내리는 밤 ( 고려말 이재현 )
종이 이불에 한기 돌고, 불등은 어두운데
사미승은 한 밤 내내 종을 울리지 않았다.
응당 자던 손님 일찍 나간 것을 꾸짖겠지만
엄지 앞 눈에 놀란 소나무 보려 했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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