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戀歌

이슬과 노을 2023. 10. 15. 23:27

우리가 만일 바람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깊은 안개에

눈 가리고

낯 가리고

심장에 칼 꽂는 피도 가리고

허공에 잠시 웃다가 돌아가는

바람이 되어 만난다면

 

수수깡 널려 있는 뜰안 한 귀퉁이

혹은 대청마루

반들거리는 나무결 위에

습기 없는 햇살로 

다시 만난다면

 

모두가 떠나가고

첫눈 내리는 아침

비상하기 위하여

날개를 펴는

새의 순수로 만난다면

 

질기고 긴 세월

구석구석 저리는 관절염의

아픈 밤비로 만난다면

오,

우리가 매일 무엇으로 다시 만난다면

                     -- 강계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