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이른 봄

이슬과 노을 2023. 9. 1. 00:13

봄바람이 달려간다. 황량한 가로수 길을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간다.

 

울음소리 나는 곳에서 몸을 흔들고

헝클어진 머리칼 속에 휘감겨 들었다.

 

아카시아 꽃들을 흔들어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몰아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늘하게 했다.

 

웃음 짓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지고

잠이 깨어 부드러운 들판을 여기저기 더듬고 있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처럼

새벽노을 붉게 물든 곳을 향해 훨훨 날아서 지나왔다.

 

연인들이 소곤대는 방안을 빠져나와

봄바람은 소리 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혀 꺼버렸다.

 

봄바람이 달려간다. 황량한 가로수 길로,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간다.

 

벌거벗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산들바람은

향기를 몰고서 이 마을에 찾아왔다.

                     --호프만시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