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들장미 덤불
이슬과 노을
2023. 6. 2. 23:57
어둠이 깔리고 비 내리는 저녁
어쩌면 저렇게 싱싱하고 정갈하게 서 있을까.
활처럼 휘어진 덩굴로 선물을 주면서도
장미의 존재에 침잠해 있구나.
밋밋한 꽃들 여기저기 어느새 피었구나.
어느 것 하나 바라지도 돌보지도 않았건만
저렇게, 자신을 끝없이 능가하면서.
형언할 수 없이 제 풀에 흥에 겨워,
저녁의 골똘한 생각에 잠겨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소리친다.
오, 제 모습 보세요. 보라고요. 보호받지 않아도,
얼마나 당당해요. 이만큼 스스로 컸잖아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