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지는 달이 다정히 병풍 속 엿보네요

이슬과 노을 2023. 3. 10. 20:40

 

고요한 정원에 살구꽃이 떨어지고

목련꽃 핀 언덕 꾀꼬리 울어라

오색수실 비단 장막 봄기운 차가운데

박산향로 향내가 하늘거리며 날려요 

잠 깨어난 아가씨 곱게도 단장하는데

향기로운 비단 보배 띠 원앙수를 놓았네

드리운 겹 발 거두고 비취휘장 치고서

시름없이 은쟁 잡고 봉황곡을 타네

황금재갈 구슬안장 말 탄 임 어디 갔소

앵무새 다정히 창가에서 속삭이는데

풀밭에 날던 나비 뜨락에서 길 잃고

꽃 주변 아지랑이 난간 밖에 아물거려

누구 집 연당에서 피리 소리 들려오나

달빛은 좋은 술 담긴 잔 속에 가득한데

근심으로 잠 못 들어 홀로 지새는 밤에

새벽이면 일어나 눈물만 옷자락에 적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