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범벅 (2016. 04. 08 )
은행을 다녀오다
공원앞 잔디에 털썩 앉아 쑥을 그득히 캐었다.
큰 전봇대밑을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는 푸짐한 쑥무더기!
쪼그리고 앉지 못하는 터라, 지팡이도 길게 눕혀놓고
아주 편안하게 다리 쭉 펴고 앉으니 캐기도 좋고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봄기운, 봄바람, 봄볓.
내가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평화로움을 뿌듯이 느낀다.
아! 이제 완연한 봄이로군. 이 좋은 봄볓을 가득히 받아볼줄도 모르고
열심히 모자여인으로 땅만 보고 걸어다녔었구나.
지팡이 짚은 내가 너무 싫어서, 내 처지가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였다.
그런데, 너무나 따뜻하고 바람도 정겨운 오늘.
난 그 긴장감과 불평을 벗어던지고 갑자기 편안하게 나를 쉬게 해주었다.
얼마나 소복한 쑥무더기였으면 자리도 옮기지 않고 한자리에서 한봉지를
다 캐고 돌아와 맛있게 만들어먹었다. 정성을 다해 만들고 먹는 쑴범벅!
혼자서도 잘 해먹는 이즈음의 나다.
부추김치, 얼갈이김치, 열무김치 등 갖가지 김치에 반찬도 제법 잘 해먹는다.
웬일일까? 무슨 일이람.... 마음이 어지러울때는 몸을 고되게 하는것이 최선임을 안다.
평생 살면서 절대 반찬을 사먹지 않는다. 느끼하고 달달한 걸 먹느니 차라리 힘들어도
끙끙대며 혼자 해먹는 일에 익숙해진게, 다리 수술한 후의 내 생활이다.
부추전도 김치전도 후다닥 해서 먹는맛!
웃으운건! 무언가를 든채 잠깐씩 침대에 허리를 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도 적응한다.
내게도 봄은 오고, 세월은 가차없이 흘러만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잘 살아내고 있는건가?
참으로..... 참으로 좀 그렇다. 얄궂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