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이 새벽 ( 2012. 12. 18 )
여학교때 그랬던 생각이 난다. 잠이 안 오면, 공부를 하면 되지, 무얼 걱정이야? 영어와 수학보다 암기과목을 택해서 외우
다보면, 잠은 살며시 나를 재워주었었다. 그리고 벼락공부라는 것으로 좋은 성적도 냈지만 대입 공부를하던 고3 시절에?
어릴적에는, 소녀시절엔, 안된다는 일이 별로 없었던듯 했다. 엄마가 "우짜던지, 일만정신"으로 나를 공주병으로 감쌌기 때문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미국으로 떠난 오빠대신 가장이 되어 안해본것 없이 다 해보셨던듯 했는데, 나에겐 무조건 통과
였다. 학교 바로근처에 살았던 나는, 무조건 우리집에 오고싶어하는 친구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우루루 데리고 가면, 엄마는 얼른 가마솥에다 김치국밥을 푸짐히도 끓여서 차려주고 피해주셨다. 단칸방이어서 계실곳이 없이 어디든 바깥으로 나가시면서 하시던 말씀! "부모 팔아 친구 삼는다 했다.우짜던지 많이 먹고 공부많이 하고, 놀다 가거라" 알고보면, 엄마는 워낙 얌전해서 동네 마실갈만한 곳도 없이, 동네 시장이며 동네골목들을 돌면서 철없는 우리들이 편하게 놀도록 늦게 들어
오시곤 했다. 여고생들인 우리친구들은 학교가 파하면, 나를 에워싸고 "너네 집에 가면 안돼? 너네 엄마가 너무 좋아. 그
김치국밥이 너무 맛있어" 일부는 벌써 나를 앞장서고, 뒤로도 따라붙던 그 친구들을, 적당히 거절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안되어 매번 데리고 간다. 엄마가 유난스레 챙기는 바람에 무어든 내차지, 무어든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주었다.
마포의 은행주택의 어느 군장성집에 들어서서 쭈욱 뒤쪽으로 돌아가면 우리 단칸방! 그나마 방이 육각형같은 괴상한 모양
이었다. "엄마! 나는 이런데서 공부가 안돼! 나한테 생각이 있는데 그렇게 해줘. 응?' 떼를 썼고, 그렇게 내 공간을 만들었던
그때 그 기분, 얼마나 좋았던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흥분했었다. 내 생각이란! 기다란 장농을 가운데로 끌어다놓고, 그 뒤의 공간, 내 방이 꾸며졌다. 무조건 내 말은 통과되는 철부지였다. 나는 그 장농뒤의 내 방(?)에 책상을 놓고 구형 라듸오를 틀어놓은채 공부를 했다. 엄마가 몇번 걱정하며 물었었다. 라듸오를 틀어놓고도 공부가 되느냐고! "응,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면 공부가 더 잘돼!" 사실이었다. 습관이었고, 심야의 희망음악으로 꾸며지는 프로는 그 시절의 힛트프로그램이었다. 나도 신청곡을 쓴 엽서를 들고 방송국에 직접 찾아가서 기어이
내 음악을 듣기도 했고, 그래서 팝송을 많이도 알았었다. 입구에서 가로막는 경비아저씨에게 애교부리며 "좀 전해주세요"
하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밤에 내 이름과 함께 내 신청곡이 흘러나와서 얼마나 놀랐던가? 몇년전까지도 편지로 신청음악을 청해들었는데, 이제 컴에 올려놓고 듣는다. 저녁시간대의 어느방송국의 장수프로그램으로 그 여성 DJ 의 음성이
너무 차분하고 고와서 빠져들고, 아주 옛날의, 장농뒤의 내 공간을 추억하며 듣는다. 음악은 정말 좋은 선물이라고 여기며
살수있게 해준다. 추억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은혜롭다고 여긴다. "아! 그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