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들어오는 것들
무심히 지나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자주 일어나는 일이 이상하고 신기롭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돌아오는 길이었고, 학교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려 벽돌담을 끼고 걷다가
집으로 가는 길을 꺽었을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듯한 모습이 펼쳐졌다. 내가 이 길을 지나는 일은 성당에 가느라 자주
지나던 길인데, 사고가 나면서 멈추어졌고 오래만에 그 버스를 타게되었고, 묵묵히 걷던 담길이 끝나고 꺽이면서 아주 다른
담장이 펼쳐졌다. 학교내부와 운동장이 훤하게 보이도록 열려있는 그 담장은 어떤 큰 집의 정원을 둘른 풍성한 모습이고
예쁘다는 생각으로 발길이 멈추어지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신기했다. 커다란 호박잎들이 펼쳐져있고, 노오란 호박꽃이 이어져있고, 그 끝을 따라가는 내 시야에 너무나 예쁜 호박 한개가 매달려 있었다. 제법 크고 무게가 있어보이는 그 호박은 노란 호박이 되려고 색갈이 변해가는 도중인듯 매끈하고 연두색이었다. 그 호박을 받치고 있는 가지는 잎새사이로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호박은 내 눈을 의심하리만큼 달랑 매달려서 금방 수건으로 닦아놓은듯 매끈하고 이뻤기에 눈을 떼지못
하고 그 주변을 훑어보게 되었다. 차근차근 훑어보다 노란 호박꽃에 손이 갔다. 야무지게 몽우리진 그 꽃에 저절로 손이가고 열어보려고 해도 쉽게 열리지않는 힘이 들어있었다. 순간적인 내 손길에 놀라서 다시 다듬어주고 닫았다. 바로 건너편에는 새로 지어진 대형병원이 서있고 큰길에는 많은 차들이 4차선으로 지나가는 그곳에 그런 담장과 정겨운 모습이 펼쳐져있는것이 신기할만큼 농촌의 한부분의 풍경이었다. 호박잎과 호박꽃은 눈에 익은데, 그렇게 큼직한 호박이 달랑 매달려있는
것은 믿기어려운 모습이었고, 그 뒤로 아주 작은 검붉은 장미꽃이 숨은듯 여러송이며 그 담장은 예사롭지 않은것같았다.
호박이 제법 무게감이 있어보이면서도 오직 한개가 달랑 매달려있는것이 너무 신기했다. 손을 뻗쳐보니, 아주 높은위치였다. 남자고등학교의 담장이 이렇게 정겹게 펼쳐져있는것은 믿기지 않는 낯선 모습이었다. 길게 이어진것은 아니었지만
한참동안을 그 담장에 펼쳐진 커다란 호박잎들, 호박꽃들, 그 한개의 호박에 꽃혀서 살피며 머무르지 않을수 없었다.
게다가 그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장미송이는 아주 작아서 특이했다. 이 동네에선 익숙한 덩쿨장미지만, 그토록 앙증맞고
검붉은 색은 처음인것 같았다. 비로소 그곳을 벗어나서 집으로 향했지만, 며칠후에 다시 와봐야지 마음먹었다. 그 높이에
달랑 매달려 있는 호박은 얼마나 오래 거기 있을까? 모두들 그냥 지나칠만큼 높이에 매달린 호박은 둥그렇고 푸짐하게 생긴것으로, 오래전 내가, 어느 진열대에 놓여있는 그 "늙은 호박" 들 중에 한개를 사와서 반닫이 위에 올려놓고 감상용으로,
즐겼던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엔, 그 늙은 호박이 아주 잘 익으면 윗부분을 잘라내고 그 속을 파내서 "호박범벅"을 만들어
먹었는데, 내 초등학교 시절에 맛보던 기억이다. 거실에 고풍스런 반닫이 위에 올려놓고는, 오랫동안 지켜보며,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느냐고, 멋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다가, 남편의 반응에 무안해하던 기억도 떠오르는 하루였다. 옛것을 좋아하고
전통손바느질로 이어지던 시절도 있어서, 오늘의 나는 참 어이없이 유치하고 감상에 빠졌던듯 싶지만, 좋은 시간이었고,
그 곳이 어떻게 변해갈지, 가을이라는 계절과 함께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또다른 기대감도 생긴다.
시선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느낄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많고, 그 아름다운 자연은, 망설일필요가 없을만큼 인간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준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