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겨우 한시간남짓을, 덕수궁 뒤뜰을 산책하고, 연못가에서 사진을 찍던 나는 그 무엇도,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거리낌없이 아이처럼 그 자연을, 세상을 만끽했다. 2-30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연못가로 다가가기 위해, 멋스러운 바윗돌로 만든 계단을 기어 내려가고, 또 기어올라왔다. 지팡이와 양산을 던져버리고! 반듯하게 확실한 계단이 아니라서
얌전히 내려갈 수도 없는 그곳을, 몸으로 더듬어서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핸드폰에 남기고 싶어서 망설임도 없었다.
연못이 그득하게, 물이 안보일만큼 꽉채운 연잎? 다 자라지 않은 연잎이라고 믿어졌다. 그 광경이 신기했다.
가끔이지만, 내게 가능한 자연과의 만남이고 으슥한 덕수궁뒷뜰의 산책은 매번 만족하고 돌아오곤 하지만, 오늘의 내겐,
웃으운 연출을 할 만큼 아름다웠고 뿌듯했다. 연못둘레로 음료수를 마시며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더 가까이, 더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샷을 하느라고 열중했던 내 모습이 헝클어짐도 상관없었고, 그리고는 높이 솟은 나무들이 서로 맞닿은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것은, 매번 가을녘에만 다니다가 이렇게 따가운 여름에, 거기다 장애자가 되어서일까? 불현듯 가슴뛰며 나선, 굉장한 모험이었다. 커다란 백에다가 비상용품을 다 챙겨넣고 나서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만일에? 그 생각까지 하던 내가 막상 도착하고 만난 그 자연에 대한 느낌은 감동일수밖에!
세상은, 자연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거였구나. 8개월넘게 웅크리고, 절망속에 한의원만 드나들면서 나는 얼마나 피폐했던가.
한의원에서 중환자만 쓰는 낮은 침대로 안내를 받다가, 갑자기 내가 반발하며 아무침대던 들어가겠다고 우기면서 가슴이
아팠었다. 왜 내겐, 모든이들이 안쓰럽게 쳐다보고 섣부른 위로를 하려드는걸까? 그것이 너무 싫었다. 숨고 싶었고, 없어져
버리고 싶었다. 이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모든것을 해내면서 환자가 아니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어제 문득 생각했다. 벗어나보자, 내가 하고싶으면서도 미루기만 하던것을 하나씩 찾아서 해보자. 그러니까 가슴이 뛰어서 지난밤을 거의 못자고 나섰는데, 유난히 화창하고 맑은 날씨는 나를 그렇게 이상한 여자로 만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슴벅찼다. 기대하던 전시가 하필이면 휴관인것이 섭섭했지만, 또 다른 전시관을 찾아나섰고, 그 사이 장소를 옮겼고 또 잘못들어선탓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지만, 드디어 만난 천경자화백의 상설전시장을 꼼꼼히 돌아보며 뿌듯했던 심정! 그분의 그림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분의글솜씨에 매료되어 더 좋아했었는데, 오늘 전시장에 진열된 12권의 에세이집! 그중에 꼭 한권만 내가 지니고 있다. 입구에 실물처럼 꾸민 그분의 작업실과 유품들을 보고 또 보았다. 방바닥에 놓고 그리는 작업
실의 그 유품들로 진열된 그 접시들에 말라버린 색상들, 그 앞에서 앞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리얼해서 놀라게 했다. 위작사건에 휘말려서 가슴아파하시다 결국 작업을 접어버리고 미국에 이주하셨다고 알고 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뉴욕의 따님집 한방에서 결국 다시 붓을 들었고 작품을 계속하신것은 그 분의 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것 같았다. 틈틈이 내놓았던 에세이집에 나는 열중했고 평탄하지 못했던 삶을 의연히 이어가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내 관심은 어줍쟎은 감상이었겠으나 일시 귀국해서 서슴없이 내놓았던 기증작품 90여작품! 오늘 보니 60년간의 작품이라고 했다. 과연 그분다웠구나 싶었다. 전시장을 나오자 곧 화장실에 들어가서 응급처치를 해야했다.열 손가락에 피를 뽑고, 알약을 혀밑에 녹이고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기다리다 나와서, 퇴근시간에 쏟아져나오는 직장인들 사이로 걸으면서도 하늘은 여전히 아름답고
가슴은 충만했다. 한가지씩 해내자. 더 망설이고 늦추지 말자. 오늘보다 더 조심하면서 갈증을 풀며살자. 웅크리지 말자.
많이 힘들면 오늘처럼 불쑥 나서보자. 단! 한달에 두번으로 나를 허락해주자. 다가오는 가을에는 인사동에서 충만해보자.
몰라도, 어려워도 나는 그런 전시장이 좋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