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러진 우산살

이슬과 노을 2022. 7. 27. 01:09

장맛비가 지루하게 오다가다 하다가 완전히 사라진 뒤의 무더위는 참으로 불쾌한듯 하다.

비오는 창밖의 모습을 멍 하니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옛날의 일이 떠오른다.

시골에서 짧은 세월이었지만, 그 시절은 정말 여러모습과 아픈 얘기를 내게 만들어주었다. 

거의 한시간 가량을 걸어가야 하는 학교인데, 갑자기 비가 내리면, 난 엄마랑 싱갱이를 하곤했다.

버스가 있어서 정거장마다 서고 몇정거장을 달리고, 학교앞에서 내려준다면 우산이 없어도 괜챦은데, 

무작정 걸어야하는 시골길을 우산없이 걸어가야 하는터라, 한개밖에 없는 파란 비닐우산을 받아서 펴보다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도 있었다. 지금처럼 미끈한 천으로 된 우산이 아닌, 비닐우산!

그것은 가느다란 나무가지로 엮인 것이었고, 게다가 몇개가 부러져서 우산은 찌그러져 있고, 나는 내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에게 창피해서라도 그냥 가겠다고 우겼다. 그 찌그러진 우산은 정말로 싫어서 울기까지 하며

우기고, 엄마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어떻게해서든 들려 보내려고 달래고 안아주며 사정을 하다시피했었다.

그때의 엄마마음을 백배 이해하고, 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평생 야단도 못치고 무조건 달래면서 살아낸터라

지금 떠 올리는 엄마생각은 가슴이 아프게 한다. 왜 그토록 철이 없었을까? 왜 그렇게 엄마를 속상하게 했을까?

내가 학교가는 아침엔 이래저래 엄마가 나를 위한 시중과 달램, 밥상에 같이 앉아  밥을 남길가봐, 그리고 없는 반찬에

조금이라도 덜 먹고 갈가봐, 밥숫갈위에 김치도 찢어 얹어주고, 깻잎도 얹어주고 하던 모습까지 흑백영화를 보듯이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있다. 밥상은 하얀 양은에 꽃무늬가 그려있었다. 그리고 깻잎을 떠올리는건, 내가 그 깻잎을 좋아

하니까 매 끼니마다 빠트리지 않고 올려주었다. 한장 한장 씻어서 물기를 닦아, 한장 한장 양념장을 발라주던 그 수고로움

을 쳐다보며, 엄마는 왜 저리도 힘들게 반찬을 만들까 하는 생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찡 하기도 할 줄 알았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보리쌀을 앉히고, 그리고 지켜앉아 연기를 마시며 불조절을 하던 엄마는 그 흔한 신식 옷차림도 아니고

검은 무명치마와 흰저고리에 커다란 앞치마, 머리엔 하얀 수건을 두르고 열중하던 그 모습이, 그 시절엔 너무나 당연했고

굳이 사입으려면 구할 수 있는 편리한 개량식 복장도 갖추지 못하고 가난의 징표인냥 그 차림이 교복처럼 항상 똑 같아서

엄마가 밉기도 했었다. 우리엄마도 편한 옷차림, 화학섬유와 블라우스 같은 옷을 입었으면 좋겠는데 싶어서 속상할줄도 

알았던 내가! 비오는 날이면 그 파란 비닐우산가지고 왜 엄마를 속상하게 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더구나 내가

무척 좋아하던 깻잎을 너무나 열심히 먹여주던 모습은, 내가 서른후반에 이민을 가서 만난 엄마가 " 너 이 깻잎좋아했었지?" 하면서 아파트에 딸린 작은 공간에 직접 심어 길러서 내가 다니러가면, 챙겨보내려고 그 지루한 과정을 마다않고,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서 양념장을 한장씩 발라 차곡차곡 포개던 모습을 나는 응석처럼 쳐다보고 기다렸고...... 언니집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있던 우리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고, 가슴아프고 미안하고 그런다. 지금 이렇게 편하게 사는 한국

이지만, 선뜻 내켜서 해보는게 쉽지않은데 엄마의 그 정성, 사랑을 받으면서 그 힘든 미국이민생활에서도 항상 냉장고에 김치며, 밑반찬들을 채워주었었다. 언니몰래 열심히 만들어 챙겨놓고, 내 집에 갖다주고 싶은데, 운전해서 데려다줄  언니에게 말을 못해서 눈치를 본다고 웃어대는 언니는 "하여간에! 엄마는 일만정신으로 넷째딸생각밖에 안하지?"라고 했단다. 

가끔  우리집에 하루 묵어갈때도 밤을 새워 냉장고정리를 하던 엄마의 움직임이 내 귀엔 너무나 잘 들리는데, 아무리 말려도 안되고, 이른아침 출근하려고 나서면, 이미 현관문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가는 길에 날 좀 잠깐 데려다주고 가면 안되겠나?" 시간을 다투는 직장은, 언니집과 반대로 달려가야 하는데도 나는 아무말도 없이 모셔다 주고 가야했던건, 엄마가 잠깐이라도 내가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은 모정이었다. 그 반쪽머리가 (편두통)또 생길가봐 너무나 걱정이었고......

왜 내가 우산얘기를 하다가 또다른 엄마를 추억하고 있다. 그 부러진 우산을 마다 하면, 서둘러 무영실로 그 부분을 꿰매어주면서 쩔쩔매던 엄마표정은 절박하기까지 했었다. 그렇다고 얼른 차를 타고 시내에 가서 좋은 우산을 바꿀수도 없었는지

비가 올것같으면 미리 우산살을 살피고 꿰매놓고 잠들던 엄마모습을, 나는 자는척 하면서 곁눈짓을 하면서 그 투정을 조금씩 줄여갈줄도 알게되었다. 나를 유난히 편애하는 엄마에게 미안함을 느낄줄도 알게되면서 그 시골에서 졸업을 했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인데, 비만 오면 그 장면이 떠올라서 멍해진다. 아무리 효녀고 효자래도 엄마의 그 모정을 완전하게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