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동창생
동창생의 우정은 초등교도 아니고 "여고동창생"의 우정이 가장 깊고 오래이어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넘치게 많이 받고도 나는 숨어버렸었다.
내 남편이 떠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내가 너무 오만했음을 느끼고, 가슴아프고, 미안하면서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져가는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혼자가 좋다고, 아무도 필요없고,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던 나!
친구들은, 서로 내 안부를 물어보고 꾸준히 전화해보고 하면서 몹씨나 걱정하면서 나에 대한 우정은 변함없었다는
사실에 내 마음은 그냥 무너져내리고 주저없이 내마음을 활짝열어버렸다. 내일 와서 자고 가라고!
두 친구를 상대로 한나절을 전화로 옛날 얘기를 하면서, 그 친구들은 항상 그랬던것처럼 내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지니고 내 오만과 고집을, 여전히 껴안고 있음을 느꼈다. 내 호칭이 "대장" 이었고, "그래 그래 알았어" 라는 말로
나를 편하게 해주고 다 들어주었었다. 전화를 무조건 받지않으면서 나는 한명의 전화번호도 외우지못하고산다.
번호가 낯설다는 이유로 무조건 끊어버리려는 나를 , 다급히 내 이름을 크게 불러대는 바람에 "누구니?" 하면서
내가 붙잡힌 것이었다. 변명도 이유도 없이 그냥 우린 편해져버렸다. 며칠전에 만났던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아! 이게 진심이고 우정이구나 싶었다. 주저없이 무조건 내일 오겠다고 서둘고 내 주소확인과 시간을 정하면서
우린 수학여행떠날때처럼 들뜨고 좋아라했고, 나는 억망인 내집을 깊은밤까지 치우고 정리하면서 몇번씩 샤워
하듯이 땀에 젖었다. 9년동안 계속되는 사고들에, 뼈저리게 아프고 외로웠고 그냥 무너질듯한 고비를 수없이
넘겨내면서, 모두를 외면하고 혼자를 고집하던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이 커져가면서도 나는 누구를 찾지도 않을생각
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처사라고 믿었는데, 그 두친구는 2명의 베스트프랜드였고,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오늘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넉넉한 웃음으로 "그래 그래 " 라는 표현만 하면서 나를 품어주었다. 그 둘은 무조건 그 표현만
썼었는데, 오늘 듣는 그 한마디가 나를 무너져내리게 했고, "내일 와서 자고가! " 그 한마디에 너무나 반가워하고 고마워
해주었다. 나의 교만과 고집으로 외면했던 우정은, 그렇게 엮어졌다.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꾸 자꾸 웃어봐야지.
마구 떠들어봐야지. "사람은 절대 혼자 살수는 없습니다."의사 선생님이 나를 달래듯 해주시던 한마디를 떠올리면서도
내가 손을 내밀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저지른대로, 혼자를 지켜가리라 하는 생각은 뿌리가 너무 깊었고, 체념이었다.
그 잠간의 순간에 그 친구가 다급하게 내이름을 소리내 불러대던것은 재치였고 강한 힘이었다. 남편 장례식을 꼬박 곁에
있어주고 자기남편의 말대로, 빈집에서 무서울거라고 하룻밤을 같이 있어주었었는데, 나는 그 배려를 다 받고도 소리없이
집을 팔고 한통의 전화도 없이 숨어버렸었다. 그 남편의 나에 대한 배려도 긴세월 특별했고, 나와간다면 해마다 겨울바닷가의 여행을 무조건 허락해주었고 전화로 화이팅까지 해주었었다. 바다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으면, 살그머니 비켜주고 혼자있는 내 모습을 찻집의 유리너머로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말한마디 시키지도 않고, 우리는 그렇게 강원도를 누비고 다녔었다. 친구와 남편이 번갈아 내 짝이 되어주던 그 겨울바다가 떠오르면 밤을 지새우며 가슴이 아팠고, 그 고독은 뼈져렸다.
다시 찾을수는 없을거라는 생각때문에.... 중학교일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가 짝이 되어 맺어진 인연! 그 어릴때부터 그친구는 무조건 양보, 그리고 배려하고 참기만해주어서, 아마도 나는 일방적인 우정을 너무나 당연한듯 누렸던것같다.
참 어이없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내일은 우리셋이 지칠만큼 웃어대고 행복하도록 내 마음을 다해 맞아주고싶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미안함, 긴시간 기다려준 그 두친구에게 이젠 내가 베풀어야할 시간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