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셋방살이

이슬과 노을 2022. 7. 2. 00:17

장마가 거의 끝난듯하고, 나는 베란다 밖으로 강,약의 빗줄기를 내다보며 6월의 장마를 보냈다.

갑자기 심적변화로 나를 테스트한다고, 열심히 다니던 한의원의 침과 물리치료를 포기하고 내 몸을

파악한다며 테스트의 일주일을 보내면서, 결국 터득하고, 인정한건, 내가 길러야 하는 끝없는 인내심,

그리고 기약없는 통증과의 전쟁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3일후의  월요일부터는 다시 얌전히 한의원을

찾아가서, VIP 침대라며 내가 호칭하는 그 1,2번의 침대가 비워지길 기다려 치료를 받는 일상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했는데, 왜 이리도 울적할까? 그래서 나는 자꾸만 "수필"란을 메꾸며 마음을 달래보는것같다.

이시절, 저시절, 그리고 산만하게도 기나긴 글을 써대는건, 참 웃읍기도 하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성격이 내게

그나마 도움을 주는거라며 감사해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잠깐 컴을 하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한시간의 

간격을 지키려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정을 쳐다볼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는 일도 없는 긴장감!

참 웃읍게도 나는 옛일을 많이 기억하고, 그 사건마다 또렷한 장면들이 재미있어서 써대는것 같다. 한권의

수필을 펴내는걸 남편이 응원했고, 출판사 사장이 "이제 등단을 하시지요. 반응도 좋은데!" 그말을 전하는

내게 "당신, 착각내지는 욕심아니야?  그리고 아들한테 이건 비밀이야. 그저 주부인 엄마가 목돈들여 책을

내는건, 자식에게 보이는, 부모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것같아." 그러면서도 술이 거나해지면, 한동안 글쓰기

강의를 하듯 열변을 토해내며 입맛을 다시던,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 웃으웠지만, 나 또한 "학교교사로서는

좀 과한 거야." 그 말들에 잘 순종하며 따라주었었는데, 그 사람의 빈자리가 이리도 클 줄은 몰랐다. 아직도 아들은

엄마의 사건을 전혀 모른다. 마지막 이별을 할 때가 온다면, 이 블로거 주소와, 간직한 한권의 책을  남겨주고 싶다.

노년에는 미술전시회도 더 자주 다니고, 겨울바다를 찾아가고 할 수 있을 줄 환상을 가지고 살다가, 이 엄청난 고난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나를 옛날로 데려가는 기억이, 나를 맴돌면 나는 컴을 두드린다. 그리고 잠에 깊이 빠져들곤 해서

다행이다 싶다.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보면! 결혼을 하고 셋방살이로 시작되고, 새댁이라는 말을 듣던 첫 셋방살이에서,

무참하게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집주인 여자의 특별한 인성이었다. 안채를 지나 구석쪽에 한칸의 방! 부엌도 없이

연탄아궁이불을 꺼내어 밥을 짓던 내겐, 12월에 결혼한 나를 울고 싶게 했었다. 그 아궁이에 밥을 해먹을려면 서서 울어버리고 싶게 힘들었다. 그 아궁이 위쪽으로 빼꼼히 내밀게 달아놓은 연두색 쪼가리지붕, 작은 밥상보다 더 작은 쪼가리는 

비를 피하라고 달아놓은듯 했지만 너무나 인색한 배려라고 생각했었다.거기 서서 밥을 하고 있으면, 칼처럼 퇴근해서 

저녁밥을 기다리는 남편의 재촉또한 원망스러웠다. "아직 멀었어.?" 하면 "몰라요. 아직 멀었어요" 그러면서 손을 호호불던 새색씨! 밥을 먼저 해서 내놓고, 다음은 생선을 굽거나 멸치볶음을 하거나 기본으로 3가지는 내놓아야 하는데, 김치도 

전혀 안먹던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서 궁시렁거린다. "김치를 왜 안먹는담? 그걸 먹으면, 한두가지 반찬으로 되는데! 엄마 나 어떻게 해?" 마지막 된장찌개까지 끓여서 밥상을 들여가면, 밥은 이미 찬 밥이 되어있었다. 너무나 간단한 방법을 모른채 쩔쩔매다가, 멀리 있는 친정에 가서 엄마에게 마구 하소연을 했다. "아니, 그렇게 밥을 해먹는다꼬? 니는 머리가

우찌 된거 아이가? 니는 모범생이었쟎아? 석유로 쓰는 석유풍로를 하나사서 같이 쓰면 빨리 안돼나? 그런 생각도 안해봤나?" 응석부리며 울다가 한참을 웃어버렸다. 엄마 무릎을 두드리면서! "세상에나 그러면 되는데, 나는 진짜 머리가 잘못된

거 아닌가" 그렇게 돌아와서 바로 실천에 옮기고 밥을 빨리 해서 들여가면서, 놀라는 남편에게 친정까지 가서 얻은 지혜라고는 절대 말하기가 싫었던 나는 " 아, 그냥 묻지말고 먹어요!" 그랬다. 모두에게 싹싹하고 부드러웠던 내가, 남편에게는 왜

그리도 무뚝뚝했을까? 그걸 애교부리는 간지러운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평생 고치지 않고 살아서, 나이든후에 다투다가

내게 한마디 던졌었다. "나같이 잔소리 안하는 마누라가 있는줄 알아요?'  "아이구, 당신은 그 침묵으로 사람 쥑이는거 몰라?" 비로소 내 태도를 돌아보았었다. 엉뚱한 얘기로 들어섰는데, 나를 비참하게 하던 주인집여자! 얼마나 깔끔하고

차가웠고 특이했던지, 마당을 말끔히 시멘트로 단장해놓고, 내가 외출을 하거나 찬거리를 사서 들어가면, 곧장 나와서 마당에 수돗물 몇바가지를 부어서 씻어대었다. 처음엔 못느끼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녀는 내가 바깥에서 묻혀온 신발의

흙이 못마땅해서, 지체없이 나와서 해결하고 들어가는것임을 깨닫고, 기막혀서 가슴이 너무 뛰었었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고 직접 물로 씻어내라고 하는게 낫지. 어떻게 저렇게 말없이 사람 기를 죽이는걸까 생각하며, 나는 나중에 집주인이 되어도 마당은 흙으로 두고, 빙둘러 꽃으로 화단을 만들어야지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내가 집주인이 되는건 불가능이었고, 친구들이 가르쳐 주어도 첫 주인이 될때,  명의를 나로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못한채  실천해보지도 못했고, 주인여자얘기를 하면 분명 남편이 나를 무시할가봐, 입을 꾹 다물고 겨우 몇달만 살다가 이사를 했었다. 그때의 그녀는 참으로 한심하고 인간성이 결핍된, 별난 여자로 무시하며 고개를 저어가며 살았었다. 한참을 지나 엄마에게 얘기를 했더니, 여자가 혼자 살면서 집을 지녔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너는 그걸 그렇게 이해하지도 못하느냐고 무안만 당했었던 기억! 

그래서! 오래도 걸렸던 셋방살이를 거치면서, 집주인과 얼굴이 마주칠일을 피했던 것이 나의 방법이었다. 

그래도, 그런 셋방살이신세를 하던 일이 길었어도 내겐, 젊음이 있었는데. 두다리가 멀쩡해 등산도 다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