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에
잠깐 개자 주렴에 햇살 들어 반짝반짝
짧은 모자 홑적삼에 더위가 가시네.
껍질 벗은 죽순은 비를 맞아 자라나고
지는 꽃은 힘없이 바람 따라 날아가네.
오래도록 붓 버리고 이름을 감췄으니
시비를 일으키는 벼슬살이 벌써 싫다네.
고운 향로에 향이 스러질 때 잠이 막 깨니
손님은 오지 않았고 제비만 자주 오네.
--서거전--
비를 마주하고
병풍 속에 베개 높이고 비단 휘장으로 가리니
별원에 인적 없고 거문고 소리 벌써 끊겼네.
상쾌한 기운이 주렴에 가득해 막 잠에서 깨니
온 뜰에 내린 가랑비에 장미가 촉촉히 젖어 있네.
--성현--
동궁 이어소의....
분주한 노인에게 기약한 듯 병마가 찾아드는데
봄 흥취도 많지 않아 시를 짓지 않노라.
놀라워라, 잠 깨니 어느새 봄빛이 저물어
한 차례 보슬비에 장미꽃이 져 버렸네.
--이행--
초여름 관아에서 짓다
전원이 묵었는데 언제 귀거래하랴?
인간 세상 허연 머리에 벼슬에 뜻이 없다.
적막한 대궐에 봄빛이 다하려 하기에
다시 성긴 비에 젖은 장미를 보노라.
--허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