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즐긴다는 것.....

이슬과 노을 2022. 5. 17. 00:46

쑥을 캐서 한웅큼 꾹꾹 눌러담고, 시들어 고개숙인 꽃송이를  조심스레 따와서, 저녁시간을 즐겨보니, 흘러나오는

pop song 과 함께 한껏 취하는듯 하다. 서둘러 저녁밥을 챙겨먹고, 쑥을 다시한번 다듬어 부침개를 해서 먹어

보니, 이 아니 행복한가 하는 착각을 느낀다. 그리고 이쁜 꽃송이를 우려낸 꽃차를 마시며 어둠에 묻혀가는 바깥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 온 집에 전등을 모두 끄고보니 제법 그럴듯한 밤이되어준다. "그래, 이러면서 사는거야. 

마음을 다스리고 달래고, 그러다보면....." 내곁에 음악이 있고, 컴이 있고, 책들이 쌓여있고  이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면서 또한 혼자가 아닌듯한 찰나의 느낌도 얻는다. 노력하는 나를 스스로 들여다본다. 오늘은 몇점이나 될 시간을 보냈는가 하는 정리를 하는, 밤시간을 또한 사랑하고 있다. 자정을 넘기며 주옥같은 글을 읽고, 옮겨담고 하면서 휭한

가슴에 온기를 넣는다. 오늘 쑥 부침개를 해서 먹고, 꽃차를 끓여 마시면서 식탁의자에 푹 파묻혀 달콤한 두어시간이

음악감상이 제대로 되는듯 했다. 샹송이나 깐소네가 아니면 웬만한 곡은 어렵지 않던 그 시절은 가버리고, 이제

자꾸 끊기고 단어의 스펠링이 막히고 가수이름도, 그 곡들이 떠오르는 추억들도 희미해져가는것을 절감했다. "아, 

세월과 함께 나도 희미해져가는 이 지점에 와 있구나" 그런 생각들을 부정할 수 없는 서글픈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곡에 따라 울컥 울컥 목이 메이고, 눈물이 고이고.... 하던 감정들은 오랫만에 내가 살아있음을 각인시켜주는듯

했다. 아직은 나인데, 그러나 나는 매일아침 서둘러 한의원을 가야하는 강박감때문에 허덕이며 사느라, 삭막했었구나.

오늘 집에 오는길에 내가 저지른 일이 기막혀서 혼자 어이없다. 한정거장만 더 가면 우리집앞인데, 그 자각이 80프로이고 나머지 20프로를 기사에게 물어보고 제대로 내릴 수 있었는데, 승객이 나혼자인 탓에 혼자 포기하고 내려버렸다. 

거의 모든 기사님들이 나같은 승객에 예민하고 불친절하고 히스테리칼한 반응에 익숙하면서 그래도 눈치보며 타고 내리는 내가 "다음 정거장은 꺽어서 6단지 앞이죠?" 그러면 되는것을, 그 질문에 나올 반응이 싫어서, 무서워서 위축되어서?

몇초의 갈등을 하다가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었다. 내리고 보니 나무사이로 우리 6동이 보인다. 한참을 걷고 꺽어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자국! 사람들의 발길이 지나친 흔적이 뚜렷한 곳! 몰래 지름길이 된듯한 곳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그곳을 택했다. 그리고 한두발 내딛다가 난감한 모양새가 되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거였다. 비스듬한 오르막을 통과할수가 없는 다리! 두어발자국 뒤로는 큰 차도이고, 내 바로 뒤로 사람이 지나치며 나를 볼

수도 있는것 같은 느낌! 순간 나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롤 흙을 움켜쥐며 기어올랐다. "이 무슨 꼴이람" 중얼거리면서, 이미 선택한 것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주 기막힌 모험을 하며 반쯤 올랐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느 학생이 보였다. 필경 이곳을 통과해 나가려고 오는거라고 생각이들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소리내어 그 학생을 불렀다. 나를 쳐다보는듯 해서 "학생!  나 좀 잡아줘요" 번개같이 나를 향해왔다. 그리고 재빨리

내 손을, 그리고 내 허리를 받쳐주었다. 뒤로, 내리막길인 뒤로 떨어져내릴번한 상황임을 느끼고, 몸이 먼저 움직여

나를 보호해준거였다. 발 앞에 맥주박스와 작은 나무의자가 포개져있었고 그곳을 내딛으며 "고마워요. 학생. 정말로" 

말하면서 내려서서 보니 그 학생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혼자 울듯한 목소리로 감격하고 있던거였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싶도록 기막힌 순간에 나는 구제되었고, 그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려던 길로 유유히 사라져

간 모양이다. 그제야 내가 내던졌던 지팡이를 더듬어 찾아내고 기어가듯이 집을 향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두어시간

내가 잠에 빠져 있었던거였다. 몸을 추스리곤, 현관에 밀려있는 쓰레기를 걷어 갖다버리고 돌아오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쁘게 조성이 되어있는 공간에 앉아 노을이 지는걸 기다렸다. 쉬고 싶다는 생각과 노을이 보고싶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고 등등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단풍나무가 나를 보호하듯이 서 있고 주위에 쑥과 들꽃들, 그리고 진분홍꽃들이

시드느라 고개 꺽인 나무가 있다. 불현듯 쑥 부침개가 그리고 꽃차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앉은 자리에서 정신나간

여인인듯한 모습으로 열중했다. 그렇게 오늘이 지나가면서, 부엌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부침개도 얌전히 이쁘게 부쳐

졌고, 꽃차도 우려내었다. 그리고 흐르는 음악속에 파묻힐 수 있었던건, 스스로 너무나 신기할만큼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같은것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서둘러 한의원에 가야하고, 간절한 마음으로,조금이나마 통증이 조금 덜 하지

않을가 하는 바램에 매달려야 하지만, 아무튼 괴상한 짓은 했지만, 나는 두어시간 죽은듯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서

너무 태연하게 음악감상을 하면서 목메이고, 눈물이 고이고 등등 나만의 비밀스런 하루였음은! 지어지지 않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내겐 아직 감성이 있고, 뛰는 가슴이 있고, 찰나의 순간에 저지르는 무모함속의 긴장감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