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손 내밀어 맺은 인연

이슬과 노을 2022. 4. 19. 01:43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연들이 멀어지고 끊어지고 하는것에 익숙해가는데,  어제! 내가 먼저 손 내밀어 맺은 인연에

충실(?)하느라 오늘,온 집안을 뒤집어가며 이별준비에  집중했다. 새로 맺은 인연을 위해, 22년간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시간을 아껴가면서 몰입하고 사랑했던 내 분신들을 떠나보낼 이별을 하느라 몸을 혹사시키던 심정은 아쉬움, 미련, 그런

마음이 아니고, 그토록 갈등을 거듭하며 포기에서 다시 시작을 이어가던, 내 작업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음에 신기하고 감사할뿐이다. 물론 내가 나에게 놀랍기도 하다. 내가 언제 그렇게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고, 열심히 찾아낸! 얼굴도 모르는 한 여인에게 전화 한 통으로 다가간 일이 있었던가 하리만큼,  어제 불쑥 떠오르는 생각에 곧장 시도한 내 자신이 신기했고, 우리는 처음만난 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가진 인식이나 이 작업에 대해 참으로 잘 통하는 공감대에 신기했다.

내가 한참 뜨거울때, 역이민을 하고 바로 시작된 취미생활이기도 했고, 너무나, 운명같은걸 생각하리만큼 주위를 무시하고 나에게만 몰입하며 행복하게 해 준 작업이었다. 10여년쯤전에 자주 찾아다니던 인사동 전시회에서 도록을 가져와

곁에 두고 있었고, 그 도록안에서 내 시선을 잡았던 작품이 떠올라, 곧장  찾아내고 그 사진아래 적힌 전화번호로 망설임없이 전화를 걸었던 어제의 일은! 최악의 상황에서 내 몸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낌없이 재료들을 건네줄 수 있는 상대가 막연했던 터라, 불쑥 떠오른 기억으로 이어졌고, 약속을 했다. 내 재료들을 정말로 요긴하게

쓰리라는 믿음과 적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고 그녀역시 같은 생각으로 나를 흡족하게 해주었다. 그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고, 무엇보다 품성이 참으로 따뜻하고 여성적이고 조용했다. 낯선 사람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는 태도가 놀라웠다.

무엇보다 우리는 같은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것 같았다. 서로 얼굴을 자주 보거나 왕래가 가능하지도 않는, 멀리 남해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와 건강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있는 내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작업과의 이별! 내 곁에서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작업대와 재료박스들이 거실의 반을 차지하고 나를 끝없이 힘들게 하는 갈등의 시간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전화를 끊자마자 시작한 노동이 오늘 저녁에서야 3박스를 마루

끝에 내다놓고 내일 아침에 방문접수를 오는 우체국직원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내 몸은 거의 탈진상태지만, 초긴장

상태로 짐을 싸면서 얼마나 쩔쩔맸는지, 거의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후유증이, 통증이 엄청날거라는 예감을 느끼면서도,

한의원을 며칠 못갈것을 각오하면서도, 내 공간안에서 내 시선을 끌며 ,수없는 갈등을 하게 했던 흔적들을 만지면서 

내 존재감을 되돌아볼수 있었다. 얼마나 몰두했던 22년의 시간과 열정과 성취감이었나 싶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 결국은 나를 구원해준 셈이다. 내가 조심스레 물어본 말에 정말 깍듯하고 예의바른 대답을 하는 그녀는

내가 가진 이 건강상태와 너무나 거리가 멀고 조용한 생활이 보이는듯했다. 다니러 오시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대답이었다.  교회에 다녀와서 꽃밭에 물을 주고있다가 전화를 받았다는 그녀는, 바다를 쳐다보며 살고, 쪽을 직접 키워서 자연염색을 직접하면서 작업을 한다는,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에서 나보다 훨씬 귀한 젊음과 건강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건강, 젊음..... 이 절절한 마음의 나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내 물건들이 좋은

사람에게 찾아가 요긴하게 쓰여질 일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몇번의 인연에서 받은 상처때문에 새로운 인연에 대해

생각조차 거부하던 내게 그녀는 신선함이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간 용기로 맺은 인연을, 언젠가 찾아가서 바닷가를 걷는그림이 그려지는 환상같은것으로 위로를 받는것같은 하루였다. 사람의 일이란 정말 예측불가이고 또한 불쑥

내민 내 손이 후회될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생각또한 가진다. 세대간의 불협화음이거나, 이기적인 마찰이 있을리 없는

우리 두사람이, 정말 순수한 인연으로 이어지리라는 확신은 우리가 공유하는 작업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윗사람으로서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킨다면, 아주 멀리 멀리서 살고 있고 그 먼곳에는 전혀 움직일수 없는 내 건강때문에도 확실하다고

믿는 또다른 예감이고 자신감이고 그리고 기대이기도 하는데, 이 묘한 심사는 무얼까? 나이가 들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