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이랑을 걸으며.....
쑥, 민들레, 돌나물,네잎클로버, 그리고 이름도 모르지만 눈에 익은 모습을 보며, 참으로 흐뭇했다. 그애들은 한켠에서 밀려있고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에 밟히는 과정일 뿐이지만, 나름대로 봄과 함께 자라고있다. 베란다를 통해서 늦가을까지 농사짓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한번 가보고 싶고 흙을 만져보고 싶고, 파 한단이라도 사들고 오고싶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네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겠지? 하는 생각에 접어버리던 내가, 오늘 한의원에 다녀오면서 그곳을 찾아들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대단한 용기였고, 별난 행동임을 알면서 기다란 철책으로 가리워진 그 끝을 더듬어가다가 철책마지막
의 작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드디어 성공했다. 멀리서 보던것과 달리 그 농지는 무척 많은 갈래로 영역이 분명하게 구분지어져있고, 3사람만이 잡초를 뽑고 있어서 다가갈수 있었다. 내 생각에도 20-30명의 주인이 가꾸고 있는듯 한
그곳은! 임자도 모르고 어느 큰 기업에서 사들이고는 공사를 미루고 있는 땅이며, 그네들은 언젠가는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함을 알면서도 요긴하게 농사짓는 소박한 마음일 뿐임을, 낯선 할머니의 얘기에서 정리가 되었다. 쭈삣거리며 용기를 내어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 내게, 정말로 의아한 표정이었다. "지나던 길에 쪽파가 혹시나 좀 자랐으면 한단 사갈까 싶어 들어왔어요. 아직 덜 자랐네요?" 한번 힐끗 올려다보고는 다시는 눈길을 주지않고 호미를 쥔손만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있던 할머니는, 70대쯤이고 허리가 많이 아픈듯이 자세가 참으로 불편해보였다. 그러나 지팡이를 짚고 들어간 내가 얼마나 웃읍고 이상했을까 싶어서 부끄러웠다. 나는 더 심한 장애자가 아닌가 싶어 머쓱하니 그냥 주변을 더듬는데 한곳에 이쁜 싹이 돋아나고 있는데, 그게 도라지라고 했다. 처음 듣고 처음 알게된 도라지 줄기는 참 앙증맞았고, 할머니가 드디어 한마디 하셨다. "도라지도 모르는걸 보니 농사를 지어보지도 못한 모양이구려" 할말이 없었고 민망했고.....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깊은 밤에 컴이나 두들기며 복잡한 심사를 다스려야 하는 존재임이 들키는 듯 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기왕에 들어왔으니 쑥이라도 캐어가야 겠다싶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열심히쑥을 캐어 남방호주머니에 꾹꾹
눌러담고 낯선 잎새두줄기를 곱게 뽑아 돌아왔다. 그리고 의외로 눈에 띈 네잎클로버무더기가 곳곳에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고, 나는 멍청하니 눈이 따갑도록 들여다보며 그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상상하다가 맨정신으로 돌아와 혼자 웃었다. 내게 그런 행운이 있을리가 없지. 나는! 매일 한의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다니면서 통증이라도 덜어지기를 바라는 그 외엔 꿈이라는게 있을리없지않나 하는 썰렁한 느낌! 우리아파트단지끝에서 서울로 향하는 하이웨이 진입로의 그 빈땅은 높은철책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어있고 농사짓는 그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들어갈 엄두도 못낼것 같은 곳인데,
지팡이를 짚고도 제대로 걷지못하는 내가, 비집고 들어가서는 천천히 아주 느긋하게 밭이랑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오랜만에 여유로울수 있었음에 혼자 대견하고 뿌듯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밭이랑 사이길은 너무나 좁고 험해서 그야말로 초긴장상태로 더듬어야했지만, 우리집 베란다에서 몰래 훔쳐보던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느낌이고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쑥을 다듬어 "쑥 부침개"를 만들어먹으면서 평생 처음의 시도였고, 누가 쑥을 부침개로 만들어먹는걸 본일도 들어본일도 없는 첫경험이었다. 내 돌발행동이나 감상같은것은 오늘로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마무리했다.아파트단지 안에서 마주한 목련 두그루가 심한 바람에 너무 많이 꽃잎이 떨어져있는 모습에서 나를 보는듯한 느낌?
그것은, 옛날 친구와 청평호수에서 분위기 잡다가 숨차게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면서 친구가 하던말에 마구 웃어대던 기억이 떠오른다. 살면서 가끔 그날이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되는데 "얘! 돌아오니 현실이다. 그지? 우린 아무리 폼을 잡고
분위기 내봐도 남편퇴근시간전에 오려고 숨이차고 가슴뛰는 마누라들이야." 그래도 둘다 체중이 40몇키로를 지켜주었던 날씬하고 젊음을 지닌 시절이었는데, 오늘의 밭이랑 나들이는, 자유와 대책없는 시간뿐이라서, 여유롭고 뿌듯하고 신기해서 자꾸 웃음이 터지는걸 참을 필요도 없어서 충만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