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아픈 부부의 정
"참으로 이쁜 그여인"이라고 수필에 올리고 나는 어느새 2년남짓을 그녀에게 정을 주고 지냈던것 같다. 그리고 자매처럼
여겼을까? 매일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오가며 버스를 타고 그녀의 노점을 지나치게 된다. 또한 그녀의 아픈얘기를 듣게 된것도 침을 맞기 시작한 이틀째였고, 그 몇번의 만남! 처음에는 워커를 끌고 택시를 타고 다니던 터라,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레 내 짐을 들고 택시까지 태워주면서 이야기를 조용조용히 이어갔었다. 이제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며 오가는데, 나는 버스를 타면서 왼쪽 창가에 자리잡고 그녀의 노점을 내다보며 살피게 된다. 오늘 한의원에 가면서 내다본, 건너편 그 노점에서 그녀의 남편을 보게되었다. "남편이 안 먹어요. 자꾸 화만 내요" 그 첫마디에 놀랐었는데, 그 아픈 남편이
아내의 노점, 한켠에 앉아서 무얼 다듬고 있는 모습! 그건 아마도 마늘을 까는것 같았다. 앉은 자리도 농협건물 모서리의
아주 불편한 곳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가슴이 아프고 감동 같은것이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다보니 남편이 그곳에 없었다. "허긴 아내곁에 끝까지 있어주기가 힘들거야"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왔고, 그
부부가 둘이 마주앉아 마늘을 까던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던 그 언젠가, 내가 농담인양 한마디 했었다가 듣게된 말때문에
민망했었다. 마늘을 쪼개기만 하고 담아놓으면 팔리지가 않는다고...... 그 마늘을 깨끗이 다 까 놓으면 다시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그럼 값을 더 받느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던말이 생각나게 하는, 오늘의 그 남편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차가운 건물한켠에 앉아서 아내를 돕고 있었다. 집에 누워있으면서 얼마나 아내가 걱정되고 미안하면 다시 돕겠다고
나와 앉았다가 돌아갔을까? 아주 위중한 환자를 집에 눕혀두고 혼자 나와서, 장사를 하는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싶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고, 수술할준비도 없고 그저 막막함속에서 침묵한채로 일상을 지키는 부부! 찻길가에 펼쳐놓고 사계절과 상관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오늘 그 남편은 아내 일손을 돕겠다고 나왔었나보다. 나는 참 무정하게도 그들의
아픔에, 감상같은것으로 자정넘은 이 시간에 컴을 두드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건가? 환자에게 매달려 살피느라 장사도
접었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니 포기할수도 없는 아내! 겨우 2년남짓 알고 지낸 단골손님인
내게 중얼중얼 말하면서 먼곳을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한 그것이었다. 넋을 잃은듯 하던.......
지난주에 집에 가는길에 들려서, 생뚱맞은 수다를 떨어보았다. 냉이나물을 다듬고 있는 그녀옆에 앉아서 두서없는 말로
수다를 떠는 내게 이끌려, 아주 편안히 옛날얘기며 고향집 얘기, 살아온 세월의 흔적들을 들려주던 그녀가 참으로 고마웠다. 나에게 아주 편안하게 마음을 열어주던 그녀는 나보다 더 오래살아본듯, 그리고 모든걸 포기한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두마디 말을 나는 아주 예민하게 느낀다. 공감이 아닌 이질적인 느낌으로 반응하곤 한다. 그녀에게는 그런 근사한 표현이 없어도 충분히 그 아픔이, 슬픔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모든것을 내려놓고" 라던가 "마음을 비우고" 라는 그런 표현은 법정스님의 책에서나 성인들의 글에서는 아주 편하게 다가오는데 왜 그렇게 낯설까 싶다.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파 일어서려는데, 암담했다. 쭈그리고 앉는 자세가 허락치않는 내 다리를 잊고, 나도 모르게 그녀곁에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날 좀 일으켜달라고 부탁하던 그날의 나야말로,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듯한 인간의 본성? 나는 참으로 나약한 존재 그 이상임을 느껴야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매일, 한의원을 오가면서 버스
창밖으로 그녀의 노점을 살피고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뿐일테고, 그 마음이 순수하기만 바랄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않는 타인일 뿐이겠다 하는 생각을 열심히 하는 하루였다. 환자는! 아내가 안쓰러워 나와서 무언가 도우려다 결국 먼저 들어갈수 밖에 없었고, 아내는 그 남편을 보며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감히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이 정말 부끄러워야만
했다. "남편분에게 잘해드리세요. 돈, 자식 다 허무해요. 남편밖에 없어요. 남편이 최고얘요" 그러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내가 이름지어준 "참으로 이쁜 그여인" 보다 더욱 더 가슴이 따뜻하고, 깊고도 깊은 남편에게의 사랑이 보이는듯 했다. 그리고 둘이서 사이좋게 앉아 마늘을 까는 모습이 더없이 정겹고 다정해 보이던 부부가 지금은 따로따로 있으면서, 각자 아픔을 다스리고 있을것 같다. 집에서 8정거장이면 한의원에 내리는데, 그 내리는 한정거장앞인 그녀의 노점을 보겠다고 긴장하고 열심히 그녀를 찾는 나는, 호기심이나 동정같은 것으로 그들을 대하는것이 아니길바라는 마음일뿐이다. 몰래 바라볼뿐, 더 이상은 다가가지 말고, 부담도 주지않는 내가 되어야 할것같다. 찻길가에 자리잡고 장사를
시작한 20여년을 그 자리에서 더 편안한 점포로 늘리지 못한것은 4명의 딸들을 키우고 출가시킨 고생인듯 한데, 그녀는
참으로 밝았고 친절했고 두부부는 따뜻함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