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무임승차

이슬과 노을 2022. 1. 27. 00:37

며칠전 "완행열차와....."란 글을 쓴 후라서 그런지 오늘, 불쑥 떠오른 기억이 있다. 여고때까지 "잘 쓰러지는 애"

그렇게 나는 심장이 약하고, 여리다고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인데, 오늘 떠오른 일은, 너무나도 맹랑하고 간이 큰

아이가 아니었나 싶어서 혼자 웃었다. 우리가 시골로 옮겨살고, 아버지는 대구의 살던 공장에 머물러야 했을때였다.

엄마가 무언가 고민하는듯 보이고 얼굴이 어둡다고 여겨져, 내가 애교를 부리며, 왜 그러느냐고 자꾸 물었고, 엄마가

내게 말을 하게끔하려고, 안기고 두들기고 하는 응석까지 부려서 알아내었다. 아버지에게서 돈을 타와야 하는데

집을 비울수도 없고, 다른 방법도 없다는 요지였다. 그 시절에, 은행으로 송금받는 것도 없었던것 같고, 우체국이용도

하지 않던 엄마였던것 같았다. 세상물정을 너무나 모르고, 내게 비친 엄마는 살림밖에 모르고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사람이라고 나름 생각하던 어린 나는 대뜸 그랬다. "엄마! 내가 아버지한테 갔다올까?" 놀라면서 안된다는 엄마를 또

조르고 졸라 그 다음날 아침에 출발했다. 아마도 학교가지 않는 방학때였던것 같다. 엄마가 준 주소한장 달랑 들고는,  

기차역에 데려다 준다는 엄마를 밀어내고 혼자 뛰어서 기차역으로 가면서,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겼다. "엄마가 준 차비를 쓰지않고 공짜로 타고 가면, 그 돈을 나중에 엄마에게 주면 참 좋겠다. 올때면 아버지가 태워줄테니까!" 그런 구상(?)을 했던 맹랑함은 지금 생각해도 지나쳤던 모험인데 어떻게 내가 그랬었지 하며 누워서 혼자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내 각오는 대단했고, 차표없이 기차를 타고 자리까지 잡고 앉아서 얼마를 가다가, 기차표검사하는

아저씨가 저만큼 뒷쪽에서 부터 오고있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뛰고 무서워서 어쩔줄 몰라하다가, 앞좌석에서 마주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실은 내가 기차표를 끊지않고 대구까지 공짜로 가고있는데, 중간에 기차표 검사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러는데 아저씨가 앉아있는 그 의자 밑에 좀 숨으면 안될까요 하는 애원같은것을

하는 나에게 옆사람들이 놀라워하면서도 얼른 그러라고, 숨으라고 도와주웠다. 그렇게 기어들어간 그 의자밑에서의 몇분간의 시간은 정말 지옥이었다. 땀이나고 숨이차고, 먼지가 싫고..... 한참후 사람들이 나오라고 해서 기어나오던 내 몰골이 기막혔던지 옆의 아줌마가 내 머리를 매만져주며 "쯪쯪"하면서 "너의 엄마는 누구길래 아이를 이 고생시키냐?"

그렇게 말하는 아줌마에게, 엄마를 나쁘게 말하는것이 너무 싫었었다. 화를 내면서 소맷속에 꿍쳐넣었던 돈을 꺼내보이고 그랬었다. "엄마가 기차표 끊을 돈을 줬는데 내가 그돈 아끼려고 그런건데요? 왜 우리엄마 흉 보세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당돌하기 그지없던 그 성격이, 내 성장과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우리 이쁜 엄마를 흉보는것만은 견딜 수 없었던것 같다. 다행히 우리가 살던 곳이어서 아버지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는데, 우리 형제들에게

아버지는 그저 무섭기만한 분이어서, 기대도 하지않던 아버지의 따뜻한 포옹때문에 놀라울 따름이었고 그 품속에서 한참 안겨있었던 기억! 우리 아버지도 이런거 할줄 아는 분이었구나... 그랬었던것 같다. 또다시 놀라운것은 나를 들여다보던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는것을 본 탓이었다. 전화가 있어서, 엄마가 아버지에게 미리 알려서, 딸네미가

찾아갈거라는 말을 들을 수도 없던 그 시절, 느닷없이 찾아간 국민하교 4학년짜리 딸에게, 놀라고 미안하고 그래서 가슴

도 아프셨겠구나 하는 지금의 짐작이다.형제들이 옛날얘기를 물으면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그당시 입었던 옷모양까지 

기억해내는 내 기억력은 스스로가 자랑하며 살았던 내게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은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다 그날밤이 되기전에 돌아온 나를 엄마가 울면서 안아주던 이유는 나에 대한 불안, 걱정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테지 싶다. 아버지가 밥 먹으러 가자고 해도 싫다며, 서두는 내게, 아버지가 주는 돈을 준비해간 보자기에 둘둘 말아 허리에 꽉 조이게 묶고는 엄마에게 돌아와서 전해주었다. 식구들 몰래 바깥 으슥한 곳에 가서, 보고를 하고 돈을 내밀자 엄마는 또 나를 조이며 안아주었다. "아이고! 내 새끼가  내 강아지가 요렇게 똑똑한줄은 몰랐다" "내가 똑똑한거 인제 알았어? 내가 공부도

잘하는데....." 그러면서 아침에 엄마가 주었던 기찻삯돈도 건네주며, "내가 갈때 이 돈 안쓰려고 공짜로 타고 갔었어"

"뭐라꼬? 공짜로 야미로 타고 갔다꼬? " 거듭 놀라는 엄마에게 의자밑에 숨었었다는 말은 하지않아야 한다는 의지정도는 있었던것 같다.그 돈을 엄마에게 도루 갖다주면, 엄마가 덜 힘들겠지 싶은 엄마에 대한 사랑같은 것 때문에 나는 용감하고 나쁜짓을 했지만 평생 비밀로 안고 살아왔던것은, 엄마에 대한 의리! 같은 마음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