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안의 풍경
불경기 정도를 지나서 심각한 시장안의 풍경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온 하루였다. 오랜 단골인 안경점을 가야되는
고집때문에 몇달을 미루다가 찾아간 남대문시장! 어렵게 먼 길을 찾아가서 보는 재래시장의 풍경은 너무나 달랐다.
내가 들른 그 큰 안경점은, 볼일을 마치고 돌아나올때까지 손님은 나 혼자였고, 상점들앞을 지나기가 민망할 정도로
주인이나 점원이 손님을 부르는 모습에 얼굴을 들수가 없을정도로 그 큰 시장안이 한산했다. 몇십년을 드나들던 그 시장은 그 중심도로가 사람의 어깨가 부딪치고, 비켜가야 할 만큼 북적이던 모습이었는데, 가장 사람이 많을 그 시간대에서
느끼는 것은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였다. 먼 길을 간 터라, 오랜만의 시장풍경을 느끼고 싶어 쉽게 돌아서기도 아쉽고 해서,천천히 그 속에 묻혀보았다. 집안에 칩거하다시피 사는 내게는 모두가 신기하고 사고싶고 그럴만도 한데 길가에 서서 만두로 요기를 하면서 보아도, 서로 불편할만큼 옹기종기 모여서 먹던 예전과 달리, 그 정스러운 풍경이 아니고
혼자서서 먹는 만두가 목이메어 "물 좀 주시겠어요?" 하는 내게 돌아온 대답에 당황했다. "없어요!" 밑도 끝도 없는 차가운 한마디에 놀라서 멍하니 쳐다본 주인은, 그 한마디만 던지고는 뒷짐쥔채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는것이었다. 혼자
생각했다. 저 차갑고 간단한 대답의 원인이 무엇일까? 뭘 복잡하게 생각하나 싶어서, 먹던 만두를 챙기려는데 남자옆에 있던 여인이 얼른, 성의있는 손길로 곱게 두번이나 싸서 주는것에 위로를 받기로 했다. 두어개 먹다가 닥친 일이고, 그녀는 내 기분을 알것같아서 대신 친절함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이 느껴져서 목례를 하고 돌아서오면서 그 남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로 했다. 큼직하게 자리를 차지한 만두가게가 그렇게 한산하니까..... 그 시장안의 풍경은 그렇게 가라앉아있고
사람들이 붐비고 흥정하고 하는 옛날풍경이 아니었다. 그래도 천천히 돌아다니던나는, 오랫만의 외출이고 내가 이 먼길
을 다시 또 올 수 있기나 할까 싶은, 내 건강때문에 소심해있던 까닭이었지 싶다. 여자들이라면 사지도 않을 옷이면서도
밀집해있는 옷가게들을 열심히 아이쇼핑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고, 나도 그렇게 기분전환을 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혹은 모녀가 서로 봐주고 권하고 충동구매도 하는 그 큰시장은 웬만한 주부들에게는 친근하면서도 익숙한 곳이었고 옛동창을 우연히 마주친 일도 있을만큼 알려진 큰 시장이었는데 싶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놀라서 돌아섰다. 옷상가 입구에 고깔모자를 쓰고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부르고 있는데, 그 소리도 크지만
그 차림새와 얼굴은 어디 놀이공원에 세워둔 간판같은 느낌이었다. 옷상가앞에서 나이도 지긋한 남자가 그러는데 내가
들어설 기분이 아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서야 하던 나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싶어 혼자 웃었다. 아무튼 그
날은 내게 불편하기만 한게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과 ,집안에만 들어앉아 컴을 두드리며 글쓰기를 하거나 바느질만 하는 내게는 필요한 경험이기도, 자극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한보따리의 짐을 끌고 돌아왔다. 아무리 찾아도 못구하던 독서대, 책을 기대어 받치고 읽을 수 있는 그것을 살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고, 처음으로 보는 대형문구점! 엘리베이터
로 오르내리며 구경하면서 찾아낸 독서대가 그렇게 반가워서, 만두집 아저씨도, 괴상한 아저씨얼굴도 다 잊고 지하까지
총 5층인 그곳에서, 볼펜이 300원일수도 있구나 싶어 한웅큼 집어들고, 이리저리 늘어나는 내 원고들을 정리하는 파일
까지 고르면서 나는 어린애가 되었다. 자꾸만 버리고 싶은것만 눈에 뛰는 내가, 명품이나 백화점 세일같은 그런 세계는
상관이 없이 사는 내가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이고 좋은 쇼핑이 아닐 수 없었다. 컴 옆에 세워두고 책을 기대어 받쳐놓고
흐뭇하게 글쓰기를 하는 기분! 다리가 무겁고 아파서 거의 장애자모습으로 다니며, 몰래 고생하는 내 지병때문에 또한
거의 울다시피 하던 나들이었지만, 독서대와 300원짜리 볼펜을 몇년 쓸만큼 구입한 그런 일이 주는 보람같은것을 받아
안고 돌아왔지만, 그 시장안의 우울한 분위기, 만두집 아저씨의 "없어요!" 한마디, 그것이 코로나로 생긴 무서운 현실
이라는 기억은 오래갈것 같다. 모두의 문제고 언제 회복되리란 기다림도 희박한 현실을, 큰 시장을 찾은 내가 느낀
바위처럼 무거운 느낌이었다. 내게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며 살아야할것 같은 교훈같은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