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했었는데.....
달려드는 차를 피해 길 아래로 몸을 날려 살아낸 기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38살의 젊음이었을까? 지금 나는 위기가 아닌 현실앞에서 힘없이 순응하며 견뎌내고 있다. 아침 7시에 기계가 돌아가는 레일아래서서 일이 시작되고, 앞치마를 입고 왼종일 그 자리에 서서 일하다가 3시 45분에 퇴근하면 정확히 4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집에 도착하고, 그리고 부엌에
서서 찬밥 몇술로 요기하고, 5시에 시작되는 피자집 주방에서 넘쳐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클로징을 하고, 12시 다 되어 돌아와 쓰러져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출근하는 일과도 견뎌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월앞에, 나이앞에 드러나는 내 몸의 상태를 인정하고 버텨낸다. 3주간의 열병을 앓아내면서 붙들고 늘어지던 바느질이 오늘 12개의 비단목도리가 완성되면서 곱게 손질해서 상자에 담아두곤, 거실바닥에서 잠이 들어 2시간을 꿀같은 휴식을 취했다. 시계를 보고
밤 9시구나 싶던 기억뒤에 나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 수 있었던것은, 몸이 아픈것과 함께 이루어낸 결과에 만족하며
긴장이 풀어졌던가 싶다. 다시 컴을 마주하고 자판을 두드리며 자정을 넘기는 이 짜릿함에 빠진다. 밤이면 맑아지고
습성처럼 새벽을 맞는 일과는 중독되어 헤어나지 못한다. 너무 아파서, 바늘과 함께해서라도 이겨내고 싶었다. 이제
다시 몸을 살피며 무리하지 않아야한다는 자각이 따라온다. 하루에 몇번이고 몸이 푹젖어버리는 이 열기,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하루를 서성이며 보낸다. 누워서 보내는 병이 아니라 서성이며 보내는 하루속에 유일한 벗이 되어주는 바늘과 함께 해서 다행이다 싶은 나약함도 익숙해져간다. 그날밤! 피자집 클로징을 하고 돌아가는 시골길같은 좁은 길에서
뒷바퀴가 빠져버려, 차를 세워두고 견인차를 부르려고 저만큼의 주유소불빛을 향해 걷는 내게 돌진해오던 차! 아니 덤벼들던 그 차는 마약에 취한듯한 무서운 흑인들이었음을 느꼈다. 피하는 나를 뒤로 하며 가던 그 차는 미친듯한 괴성과 음악소리! 그래도 나는 궁시렁거리며 가슴을 쓰러내리는 나약함도 아닌, 너무나 차분하게 길아래 빠진 몸을 겨우 길위로
올라서고는, 가던 길을 걸어 견인차를 부르고 기다렸고, 차바퀴를 빼올려준 사례를, 현금이 없어 개인수표로 긁어주고는 태연하게 집에 도착했던 기억이 너무나 또렷하게 내 머리에 입력되어있다.찰나의 순간에 나는 내가 아닌 나비였던것 같다. 그렇게 태연하게 집에 돌아와서는, 자지않고 내 손에 들려진 미니피자를 기다리던 14살의 아이가 현관문을 열어두고
기다린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서, 굳이 아이에게 내색할 이유가 없었고, 맛있게 피자를 먹는 아이를 보는것이 행복 바로 그 자체였다. 누구나 경험하는 Two Job 의 애환이지만, 아이의 엄마로서 충분히 가능했던것 같다. 물론 길게 이어졌다면, 내가 쓰러졌을것 같을만큼 무리한 일이었다. 이민생활의 숱한 고비를 겪은중에 가장 섬찟한 기억이다. 그 생각이
이밤에 유난히 뚜렷하다. 책을 써낼만큼 한많은 이민생활 체험기를, 남편이 필명까지 지어주며 밀어주었던것도 그가 남기고 간 큰 선물이다. 남편의 말대로 아들에게는 비밀로 한채, 아직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있다. 아들을 의식해서 더
리얼하게, 적나라하게 써내지 못하고 뺀 부분이 많아 아쉽긴 하지만, 내가 떠날때 그 책과 이 블로거주소를 건네주고 갈 생각이다. 아들이 엄마를 이해하고 포용해주기에는 내가 너무 복잡하고 나약한것 같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바느질을 하고 음악도 곁에 하고, 사는 이것으로 만족한다. 그토록 즐기던 문화생활! 특히 미술에 문외한인 내 자신을, 헛헛함을 채워보고 싶어 전시회를 열심히 찾던 일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 몇달이 지나고보니, 체념으로 이어지고 인정하게도 된다. 남편과 절친을 번갈아 짝을 삼고 다니던 늦가을이나 겨울바다여행은 내게 최고의 호사였는데, 남편이 떠나가고 끝난
그 겨울바다는 아직도 그립고 그립다. 시카고에 여권갱신을 하러 아들이 운전하는 차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 저 Lake ( 큰강?)에 잠깐 들려서 가면 안되겠니?" "거긴 왜?"하던 아들의 반응에 놀라서 포기했었다
아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엄마가 섭섭해할가봐 그랬던지 그곳으로 차를 돌렸다. 물가에 앉은지 5분도 안되어 시동을 걸고 "이제 가도 되는거지?" 했다. "그럼, 그럼,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13살에 미국가서 30살에 돌아온 아들은 그 사실만으로 우리 두모자가 소통이 안되고 겉돈다. 그 마저도 익숙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