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얘! .....그러지마....."

이슬과 노을 2021. 10. 12. 22:27

"너, 지금 나 흉내내고 있었니? 그런데 나는, 허리뒤로 팔돌려 받치고 있지도 않고, "아이고" 라고 소리내지도 않고,

꼬부랑할머니 처럼 구부리지도 않았는데? "

희망사항이었다. 내가 그앨 세워놓고, 잠깐 쪼그리고 앉아 올려다보면서 점쟎게 어른스럽게, 조곤조곤 말하고, 그앤

"죄송합니다" 하며 사과하는 그림을, 그려보는 나의 희망사항이었다. 나는 순간 아득해서 "얘!"라고 세번 불렀고,

그제서야 뒤돌아보는 그애한테 " ..... 그러지마....." 그게 나였는데, 나는 순간포착도, 훈계같은걸 할 힘도 없고, 그저

불러만 놓고 더듬거렸다. 재빠르게 돌아서 마구 뛰어가버리는 아이를 쳐다보며 잠깐 서 있었다. 그애가 다가왔다해도

얌전히 내 앞에 서 있다해도, 나는 쪼그리고 앉을 수도 없는 처지다. 쪼그리고 앉아 큰 걸레로 마루를 박박 문질러대는

게 해보고 싶은 일이다. 양치도, 세수도, 욕조끝에 걸터앉아가며 해야되고 설거지도 씽크대에 몇번 기대어 쉬며 해야되

고, 무릎에 힘을 주고 조금 고개숙이는것 밖에 안되는 내가, 그런 그림을 그려보면서 뒤늦게 웃었다. 며칠전 일인데 참

진하게 남아있다. 그애 엄마가,어떻게 키웠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세상이 그렇게 되어가는것같다. 그리고 나에게 한번

다시 다짐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는것 같다. "무조건 나가질 말아야 돼" 그렇게 되뇌이면서도 나가야 할 일은 자꾸 생기고, 이렇게 저렇게 실수하고 힘들어하면서도 해 내야 할일은 많다.보름전까지, 난 헤프닝이 많았었다. 대형문고를 좋다고, 가을비가 좋다고, 보첼리가 좋다며 무거운 책들과 CD를 들고 돌아왔었다. 서울나들이때는 그래도 확실하게 집에 도착할수 있어서 그랬었나 보다. 전철역앞에 주욱 늘어선 택시로 기본요금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가 태워주고..... 

죽어라 참아도,병원도 약은 받아와야하니까! 내가 힘겹게 걷는  모습에, 아마도 동화책의 "꼬부랑 할머니" 같은 그림을 본 기억으로, 내옆을 지나쳐서 바로 앞에서! 그런모습으로 우산끝을 지팡이처럼 꾹꾹 눌러대며 씩씩하게 "아이고" 소리까지 하는 아이한테서! 상처받았다고 말할수나 있나 싶다. 힘들게 걸어가는 내가 앞을 가로막았을까? 오늘은 그냥 이리저리 우울한 날이다. 거실불을 밝히지도 않는다. 낮동안 열심히  벌려놓은 명주들이 잔뜩인데, 내일 새벽에 마무리하고 덮으려고 포기한다. 작업을 포기하고도 적응하지 못해서, 고민만 하다가 오늘 명주목도리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열개의 명주목도리감을  구별만 해놓고는 밤이 되었다. 재촉받을 일도 없고, 바쁠일도 없고, 유난히 우울한 이런 밤은 그냥 잠들어버리면 감사한 일이다. 보첼리가 좋아서 CD 를 사다가 몇일을 계속듣던중, 문득 인터넷에 들어가보았다가, 속상해졌다. 작년 부활절에 대성당에서, 아무도 없는 빈 성당에서 여러곡을 부르고, 또 성당밖으로 나와서 그 휭한 곳에서 여러곡을 부르던 그가, 크게 클로즈업되면서 그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그라고 믿기어렵게 너무나 변했고, 어두워있다. 물론 그만큼의 세월탓일텐데....  바라보는 내가 문제가 있겠지. 잠깐, 쓰레기버리러 나갔다가 이쁜 나무사이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가을이 깊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동안 걷기도 못하고 있는데, 불쑥, 

민들레와 쑥을 조심스럽게 패와서 와인잔에 담그면서 빌어보았다. 뿌리까지 캐왔으니 이쁘게 자라줄려나 하고 큰 기대를 해보았다. 불도 키지않은 거실에 오랫동안 앉아서 생각은 자꾸 뒤로 이어진다. 

"이대로 가을이 더 깊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